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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Oct 18. 2022

기억

누구나 똑같지 않지, 그러니 조금 더 조심스럽게

나는 기억력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동생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날의 일을 아주 일부만, 아니 지금은 까맣게 잊고 있다는 걸 알았다. 기억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아닌가 보다. 사고의 주인공은 나였고,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그 모두를 잊었지만 나 못지않게 함께 있던 동생이 가졌을 트라우마를 알지 못했다. 



나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 아니 그 후로도 어쩌다 한 번씩, 혼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이 아주 두려웠다. 그래서 조금 더 걷거나 빙 둘러 가더라도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만 길을 건넜고, 신호등이 없는 곳은 작은 도로라도 멈칫거리며 건너기를 포기하거나 다른 누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건너곤 했다.


내가 9살이던 약 30년 전쯤에 ‘퐁퐁’이란 이름으로 부르던 대형 트램폴린이 동네마다 하나씩 있었다. 같은 동이었지만 집에서 제법 큰길 하나를 건너가야 있던 그 퐁퐁을 타러 나서던 길이었다. 두 살 차이 나는 여동생과 저 길만 건너면 신나게 놀 수 있다는 희망으로 잠깐 차들을 피해 서 있었다. 지나는 차가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얼른 뛰어 건넜고, 동생은 우물쭈물하다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을 얼마 건너지도 못하고 모범택시 한 대에 부딪쳐 제법 먼 거리를 날았고, 심각한 외상은 없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길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이가 되었다. 내 기억에는 택시에 부딪쳐 내가 공중에 제법 높이 날았고, 엎드려 쓰러지진 않았지만 주저앉은 채로 있다가 날아간 신발을 주워 들고 얼른 다시 퐁퐁을 타러 가야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모습만 남았다. 어렸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타고 있던 손님을 내려 두고, 병원에도 가지 않겠다 바득바득 우기는 나를 안아 들고 우리 집으로 갔다.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한 달 넘게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을 드나드시며 내 안부를 묻고 또 물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 일을 동생은 딸아이가 무릎이 아프다고 했던 말을 두고 꺼냈다. 오래 만난 신랑에게도 말하기를 잊었던 그 기억을 동생이 상기시켜 주었다. 언니가 그날 사고 때 W자 자세로 꽤 여러 번 바닥을 빙글빙글 돌았는데, 그 이후로 계속 다리가 아프다고 울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성장통으로 생각했던 무릎 통증을 동생은 다른 기억으로 떠올리고 있어서 놀라웠다.



말과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크게 기억날만한 사건을 두고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세세하게 기억하며 그날을 잊지 않는 동생도 있다. 나에게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만 생각했지, 함께 있던 사람의 기억까지 생각하진 못했다. 내가 힘들 때는 더더욱 나만 생각하기 바빠 내 입에서 나오는 말과 내 손끝의 일을 다스리지 못한다. 순간의 다정하지 못했던 말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또 한 번 느끼며 종종거리는 마음으로 달려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살뜰히 대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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