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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Feb 16. 2023

누군가의 필요를 두드려준다는 건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정말 나린이가 그린 게 맞을까?” 벽에 걸린 아이의 부엉이 그림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저 그림을 그려왔을 때를 기억한다. 사포에 크레파스로 그려온 부엉이 그림이었다. 처음엔 많이 화난 부엉이 눈이었는데, 선생님이 눈을 좀 고쳐주셨다며 만족스럽게 웃었던 날 말이다. 맹신하지 않지만 부엉이 그림이 집을 지켜준다고 하고, 아이의 그림도 꽤 마음에 들어서 함께 가서 알맞은 액자를 골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걸어두었다. 부엉이 그림의 효과는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웃음이 났다.


지난여름, 딸아이가 댄스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고 그럴 경우 하루 스케줄이 너무 빽빽해져서 미술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엄마의 욕심은 그게 아니었지만 아이의 요구를 나보다 더 잘 들어주는 아빠가 나서서 아이의 바람대로 정리가 되었다. 그러다 남편이 먼저 저 그림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욕심이 났는지 아이에게 물었다. 미술학원 다시 가는 건 어때?라고. 물감이 힘들고 그리고 싶은 것보다 그려야 하는 주제가 있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던 아이는 어디 갔는지 다시 흔쾌히 그러고 싶다는 말을 했다. 사실 자기 마음도 다시 가고 싶었다고.


뭐든 때가 있나 보다. 나를 닮아 뭐든 하고 싶어 하던 하고잽이 시절의 아이였을 때가 있는가 하면, 아무 의욕도 없이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던 아이도 있었다. 예측불가능한 엄마의 마음처럼 아이의 욕구도 때때로 바뀐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살다 보면, 모두 이유야 다르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는 일이 있고 그랬지만 다시 하고픈 일도 있다. 그런 누군가의 필요를 잘 만지고 두드려주는 일도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일이다. 그게 나일 수도 있고 가장 가까운 누군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런 필요를 알아준다는 것은 꽤 멋지고 고마운 일인 것 같다.

나도 그만두게 된 일 중 다시 하고픈 몇 가지가 있다. 선뜻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도 있고 언제든 다시 마음을 먹으면 시작해 볼 수 있는 일도 있다. 그래도 망설이는 이유는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거나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이겠지. 단단해질 때까지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조금 미뤄야겠다.


며칠 심적으로 힘들고 버거웠다. 그래도 예전처럼 축 처지는 게 아니라 다행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 마음이 더 가라앉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니 버틸 만큼의 힘이 난다.  가만히 최근에 기분이 좋았던 때가 언제였는가 생각해 보니 얼마 전 동생의 혼배미사를 준비하며 선물한 꽃향기가 떠오른다. 그래, 좋다! 오늘 퇴근길에는 꽃향기를 맡으러 가자! 나를 위한 꽃을 선물해야겠다. 이것이 나 스스로의 필요라면 잘 알고 두드려줘야겠다. 힘내라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듯 내 마음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것도 닫힌 마음의 문을 여닫는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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