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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Feb 09. 2023

나는 우물 같아서

불안보다 오늘의 행복을 즐기길



언젠가부터 입 밖으로 내던 투덜거림이 줄었다. 왜 그렇지? 하고 생각하다가 내가 깊은 우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꼭지만 열면 콸콸 쏟아져 나오는 수도꼭지와 나는 아주 다르다고. 세상의 속도를 거스르는 것 같지만 나는 나대로 그런 하나의 우물이라고.

한동안 계속 투덜거렸다.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것 같다가도 불쑥불쑥 견딜 수 없는 못된 마음과 답도 없는 투정이 이어졌다. 옆에 있는 남편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투정이.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의 가방을 툭툭 털어주다가 문득 어? 내가 조금 변했네 생각했다. 정말이었다. 귀에 이상한 필터라도 있는 것처럼 들려오는 말들에 미운털 하나씩을 박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느낌이 사라졌다. 뭐 때문일까 하고 한참 생각하다가 나온 결론이 그래 꼭 내가 우물 같아서,라는 것이었다. 우물 가득 물이 채워져 있을 때는 언제라도 이 물을 꺼내 쓸 수 있기에 느끼지 못하다가 물이 차는 속도보다 고갈되는 속도가 빨라 바닥을 보일 때 불안이 시작된 것이다. 언젠가 내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때처럼. 사실 그 모두는 나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해서 내 결핍을 채우지 못해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다.


변화된 나의 원인 중 하나는 사라님과 함께 시작한 10쪽 독서에서 찾았다. 행동을 강제해서라도 무엇이든 스스로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늘리니 불안함보다는 안도감이 느껴진다. 읽고 싶은 책, 하고 싶은 일들을 잔뜩 쌓아놓고 쫓기듯 읽을 때는 한두 권 읽는 것도 힘든 일이었는데, 조금씩 나누어 보니 내가 책을 읽는 속도는 그리 늦지 않았고 결국 조급함이 내 갈 길을 막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과 별개로 좋아하는 책을 꺼내 읽고 햇살을 즐기는 하루가 보태어질수록 나의 우물은 더욱 깊어졌다.

아직 철없는 큰누나 같지만 내적으로도 성숙해지고 있다. 몇 년 간 냉담하던 남편이 고백성사를 하고 주일이면 함께 성당에 간다. 말과 글을 먹고 자라는 아이처럼 나도 그런 말씀과 고백을 통해 조금씩 더 채워졌다. 말씀으로 채워진 한 주는 혼자일 때보다 둘, 아니 셋 일 때 더욱 빛났다.


잊고 있던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생각났다. 그곳에도 우물이 있지 않았나. 마치 지금 내가 나의 내면의 깊이를 살피는 것처럼 그분도 그러하지 않으셨을까.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 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고 썼던  그 시절 윤동주 시인과 같이 2023년의 내가 나를 바라본다. 늘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고 싶다. 필요할 땐 좋지만 크기가 얕고 작아 금방 마르는 그런 우물 말고, 깊고 깊어 마르지 않는 티끌 없는 우물이면 좋겠다. 목마른 어느 날, 주저 없이 한 바가지 들이켜면 숨통이 탁 트이는 그런 우물. 이끼가 끼거나 오염되어 그림의 떡이 되지 않도록 잘 가꾸어야겠다.


지난 주말에 눈앞에 쏟아지는 햇살을 벗 삼아 가족들과 오붓한 커피타임을 즐겼다. 머지않아 봄날의 달달하고 나른한 입김이 속삭일 것 같이 그렇게 좋은 날이었다. 커피 한 모금에 책 한 장 넘기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꼭 한 발자국씩 봄이 오는 소리라 여기며. 좋은 기운을 받아 그렇게 또 우물을 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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