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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r 14. 2023

봄을 맞으며

꽃의 위로를 받습니다



한결 얇아진 옷차림이 봄이 왔음을 알리지만 바쁜 하루에 쫓기어 아직 내 마음의 계절은 겨울에 머무르고 있다. 내 눈에 파릇한 싹들과 톡톡 터지는 봄꽃의 경이를 다 담지 못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올해도 어김없이 집안의 푸른 이들을 돌보다 비로소 봄이 왔음을 알았다.

식물이 주는 위로는 언제나 굉장한 힘이다. 우리 집 조그만 화분의 몬스테라 에스쿠엘레토가 겨우내 도로록 말렸던 잎을 어느 순간 활짝 편 것을 보며 움츠렸던 내 어깨도 함께 펴졌다. 몇 년 전 게으른 주인 곁에 뿌리를 내린 우리 집 식물들은 저마다 거실 여기저기에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생기 없는 집안에 초록의 싱그러움을 내뿜는다. 이마저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가 창으로 쏟아지는 해가 길어지면서 그 빛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햇살을 한껏 머금은 보드라운 초록 잎을 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채운다.


지난겨울은 마음이 유난히 힘들었다. 봄이 되면 차츰 나아질 거란 기대로 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초록이들만큼이나 내게 힘이 된 것이 바로 꽃이었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주는 위로가 누군가 건네는 위로의 말보다 더 힘이 될 때가 있었다. 나에게 작은 기쁨을 선물하겠다고 다짐했던 글 쓰는 목요일, 퇴근길에 거베라 두 송이를 사 들고 혼자 걸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런 소소한 행복을 어제도 맛보았다. 어제는 성당에서 우리 쁘레시디움 단원들의 레지오 선서식이 있었다. 뭐든 처음인 게 많은 나에게 낯선 일들 투성이었지만 굳었던 마음을 녹이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도 단연코 꽃이었다. 꽃의 출처가 생각지도 못한 본당 신부님이셔서 더욱 놀랍고 감사했는지도 모른다. 단원들 수만큼 꽃을 직접 사 오시고, 강복을 주셨다. 진정 멋을 아는 분이시다. 꽃을 건네는 사람은 누구든 그럴 테다.


꽃집에 들어서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상쾌함과 싱그러운 향기에 놀라 흠칫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2월에는 꽃을 선물할 일이 잦아 연달아 지인의 꽃집을 방문했는데, 문을 연 순간부터 풍기는 그 묘한 꽃의 향기와 매력에 나는 매료되었다. 그 향이 좋아 향수를 싫어하는 내가 생화 향 디퓨저를 검색하고, 꽃 구독을 검색하고 있었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렇다, 꽃은 그 한 송이 아니 꽃이라는 그 이름만으로도 향기를 가득 머금고 행복감을 준다. 이렇게 식물이 주는 힘은 무한하다. 아니 위로라고 해야 더 어울릴 테다.



지난 금요일에는 동네 작은 장에 나갔다가 한 송이 겨우 피기 시작한 수선화 포트를 사서 내 눈에 가장 잘 띄는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출근 전에 분명 한 송이뿐이었던 꽃은 퇴근할 무렵 따땃한 집안의 온기에 무려 세 송이로 바뀌어 피어있었다. 놀라웠다. 지금은 작은 화분에 노란 수선화 꽃송이가 몇 인지...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것까지 하면 족히 20송이는 될 것 같다. 작은 몸으로 힘껏 내뿜는 생명의 온기가 시들었던 내 마음에까지 전해져 마치 나를 꽃피우는 것 같다. 그들로 인해 나는 위로를 받고 다시 온몸으로 봄을 느낀다. 향기 없는 이 꽃도 나를 흔들어 깨우고, 비틀거리는 몸을 가만히 받쳐준다. 재작년 나에게 ‘초록의 위안’을 느끼게 해 주었던 작은 생명들처럼 내 옆에 하나의 숨으로 온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만물이 움트는 봄, 나는 닫혔던 마음을 열고 또 앞으로만 겨우 열었던 눈을 뜨고 사방을 보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눈을 뜬 오늘 하루가 감사하고, 함께 살아있음이 또한 감사한 하루를 더 반갑고 기쁘게 맞아야겠다. 지친 기운은 털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따라 걸으며 스스로 원하는 꽃을 피우는 향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되뇌며 까마득한 밤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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