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을 즐겨요

내게 작은 에너지는 이런 것

by 임루시아



봄이 되었지만 방구석과 귀찮음은 나와 여전히 한 몸이 되어 봄의 기운을 느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날씨가 풀렸으니 강변을 따라 조금 걸어보자는 남편의 말도 시큰둥한 반응으로 쫓아버리고 창밖으로 만나는 봄에만 취해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등은 봄햇살에 따끈따끈 익었고 집 앞에 핀 벚꽃이 흩날리는 걸 훔쳐보며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을 때는 봄을 쫓아 차 안에서 벚꽃터널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도무지 흥이 나지 않았다. 아니 기분 좋은 느낌이 아주 순간의 것이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봄이 되면 몸을 사리느라 우물쭈물하다가 괜히 좋은 봄날과 작별인사도 못하고 여름을 맞곤 했다. 여느 해 보다 따뜻한 초봄이었지만 이윽고 맞이한 참말로 쌀쌀한 봄은 나를 더 집안에 가둬놓았는데 누군가 이런 나의 뒷모습을 보았다면 봄이 온 줄 모르고 아직 웅크리고 있는 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말, 잠시 시댁에 들렀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곱게 핀 햇살이 초록과 함께 반짝이는 게 아주 예뻤다. 이 기회를 놓칠 새라 흙을 만지고 노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밝은 옷에 흙이라도 묻을까 눈을 흘겼다. 그러다 잠깐 마른 흙에 물을 붓고 흙 죽이라며 나뭇가지를 휘휘 젓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봄이 왔음을 실감했다. 이제는 30년도 더 지난 추억 속의 어린 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겨우내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다 주택가 골목이 웅성거리기 시작하는 때는 날씨도 풀리고 길가에 잡초들도 하나 둘 고개를 내미는 봄이었다. 온 동네 아이들이 뛰어나와 봄을 즐겼던 그때. 초록잎을 뜯어다 돌로 콩콩 찧어 반찬을 만들고 노란 흙돌을 주워다 가루를 내어 밥이라고 들이밀던 내 어린 날의 하루가 아이의 손등에 비쳤다. 자연을 만지고 놀면서 비로소 봄이 왔음을 아는 것이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할머니 댁에 가는 날이면 나도 여기저기 고개 내민 삐삐를 뽑아먹으며 자연의 맛을 즐겼다. 쑥 캐러 가는 엄마와 할머니 등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어깨너머 구경만 하던 그때에도 지금보다 훨씬 활기 넘치는 봄과 만났다.



출퇴근길에 쑥을 뜯어다 파는 할머니들을 그냥 지나친 게 아쉽고, 지난주에 식당 옆 테이블에 놓인 쑥국 한 그릇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떠올라 약을 치지 않았다는 시댁 언덕배기에 쪼그려 앉아 나도 쑥을 뜯었다. 칼 끝에 보드라운 쑥의 솜털이 닿을 때마다 어린 쑥에게서 봄 향기가 났다. 여린 잎들만 골라 한 끼 먹을 만큼만 담으며 그때 나는 올해 들어 가장 많이 땅을 훑었나 보다. 길가에 절로 핀 것들을 만지고 흩어지는 흙덩이를 도닥도닥했을 뿐인데 마음의 주름이 펴지는 것 같았다. 움츠린 어깨가 다시 들썩이는 것 같았다.


봄은, 아니 절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에너지다. 엊그제, 지난 4월 코로나를 견뎌낸 봄을 친구 삼아 걸었던 영천강변을 찾아 다시 또 걸으며 온몸으로 벚꽃 비를 맞고, 짝을 찾아 쉼 없이 날갯짓을 하는 흰나비들의 춤을 구경하며 창 안의 봄은 봄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요즘 <책은 도끼다>를 읽고 있는데 그 속에 소개된 김훈 작가의 글을 쪼개어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도 이분처럼 사소한 것을 관찰하며 얻는 풍요로운 마음을 가져야지, 그렇게 봄의 풍요도 느껴야지 하고. 연료를 가동해 볼 생각도 않고 꼼짝없이 방구석만 사랑했던 나를 버리고, 땅을 밟고 계절을 느끼며 사는 것. 가라앉은 마음에 부는 실바람 같은 에너지가 내겐 이런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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