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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y 07. 2023

제자리걸음이라도 하자

멈추는 것보단 낫잖아?



2년 넘게 길러온 율마가 죽었다.

똥손인 내가 식물을 기른다는 건 아주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사실 내가 한 거라곤 흙이 마르기 전에 잊지 않고 물을 준 일 밖에 없었다. 더디 컸지만 처음 왔을 때보다 줄기도 제법 굵어졌고, 봄이 되어 새 잎을 내는 속도도 빨라져서 참 좋았는데... 2-3주 전 분갈이를 하며 만난 녀석의 속내는 예상과 달랐다. 외양과 달리 뿌리가 실하지 못해서 봄이 되면 이 녀석 더 큰 집으로 옮겨줘야겠다며 분주하게 서둘렀던 내 맘을 자책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기왕 손을 댄 것 잘 옮겨 심자고 다짐하고 거르지 않고 물을 주며 녀석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마음과 현실은 다르게 자꾸만 마른 잎이 늘어났다. 내가 병원에 다녀온 그 잠깐 동안의 멈춤이 녀석을 완전히 말려버렸다. 조금이라도 살려보고자 아직 생명이 남은 가지를 여기저기 잘라다가 물 올림을 시도했으나 그것도 헛일이었다. 손에 남은 것은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향도 없는 율마 잎들. 내 욕심에 괜히 분갈이를 한 걸까. 흙만 좀 더 채워줬으면 더 자랄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병원에 있으며 나를 챙기느라 다른 화분들보다 목마른 율마를 덜 챙겼다. 매일 거르지 않고 물을 주었더라면 콩나물시루가 그러하듯 이 녀석도 살아있지 않았을까, 온갖 생각을 하면서. 수시로 물을 주라고 일러뒀는데 남편도 나를 챙기느라 잊은 게 분명하다.


겉으로 보기에 잘 자란 것 같은 녀석도 분갈이하느라 그 속을 들여다보니 생각지 못하게 뿌리를 널리 뻗지 못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도 스스로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이제 겨우 5월이지만 벌써 올 한 해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한 것 같다. 대체로 연초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다시 힘을 내보자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곤 하는데 이번엔 영 개운치 못하다. 그래서 뭐든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야 하는 찰나인가 했다. 사방에 발을 내리고 있어 내 한 몸 돌보는 것도 힘든 것 아닌가 여겨져서. 그렇게 온전히 쉬겠다고 하나씩 내려놓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나를 기운 빠지게 하는 시도였음을 알았다. 혼자 속으로만 하던 고민의 끝을 물꽂이에 실패한 율마를 보며 내렸다.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쉬지 않고 꾸준한 관심을 주었을 때 빼꼼히 고개 내미는 새 잎들을 만나는 일과 튼튼하게 뿌리내린 식물에게서 얻는 뿌듯함이라는 결실을 만나는 일이 아주 즐겁기 때문에. 그들이 주는 생기와 향이 나를 더욱 북돋우는 것, 작은 식물에게서 얻는 기쁨이 그렇게 크다는 건 조금만 함께 해 보아도 쉬이 알 것이다. 내가 하는 일도 그렇다. 정신없이 많은 일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지만, 어쩌면 그것들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고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지만 새 잎을 만나는 일처럼 즐겁고 보람된 순간도 많다. 그걸 알기까지 감내해야 한 수고로움이 컸지만 정말로 그렇다.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동글동글 굴러다닐 때 더 행복한 사람인가 보다.


언젠가 숨을 쉬듯 잘 쉬어야 한다는 신부님 말씀을 기억하며, 그렇게 나의 쉼에 대해서도 돌이켜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 쉬는 것일까 하고. 그렇게 찾은 답은 멈춤보단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며 쉬는 것이 낫다는 데 이르렀다. 있는 힘껏 내달리진 않지만 언제나 호흡을 가다듬고, 힘들면 잠깐 그 자리에서 걷기라도 하자고. 제자리걸음과 잠시 멈춤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멈추어 섰을 때보다 제자리걸음이라도 하고 있는 것이 다음 발을 내딛는데 훨씬 수월하긴 할 것이므로. 겉으로 보아 고고한 백조들도 수면 아래에서 엄청나게 발을 젓고 있는 걸 안다면 지금 내 감정은 단순히 투정이라 여겨질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 힘에 부치더라도 이 시기를 지나면 나는 더 성장해 있을 거란 믿음으로 스스로 채찍질을 해 본다. 한 발이라도 들고 다시 내디뎌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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