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열어 본 나의 마음

by 임루시아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이 문장은 한밤 중 길을 잃은 주인공 빌 펄롱에게 한 노인이 건넨 대답이었으나, 책의 시작과 끝을 꼭 묶어주는 그리고 다시 다음 한 발짝을 위해 걸어갈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문장이었다.


한 개인의 선택이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1의 노력을 외면하고서는 시작도 할 수 없는, 바뀔 틈도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어쩌면 그와 같은 사람들의 용기 있는 선택이 지금 우리 사회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세상을 바꾸어갈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설령 나의 위험과 수고가 따르더라도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듯, 선의를 위해 눈을 부릅뜰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펄롱이 겪었던 고뇌와 갈등은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펄롱은 비교적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긴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아내 곁에 누워 작고, 사소한 일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작고 사소한 일이야말로 세상의 퍼즐을 완성해 가는 밑바탕이었다. 아내와 딸들과의 관계, 이웃과의 소통, 신뢰와 연민... 그는 작은 일상이 주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었고, 행복의 조각과 내면의 꿈틀거림 사이에서 계속된 고민을 한 불행한 사람이기도 했다. 끝내는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에 아니라고 반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릴 적 그럭저럭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도움을 주었던 미시즈 윌슨, 보이지 않게 때로는 펄롱의 모든 처음을 함께 하고 도왔던 네드의 부성이 인간의 마음 가장 아래편에 있는 용기를 두드린 것일까.

베풀 줄 아는 사람은 베풂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눈물에 마음이 쓰이는 사람은 나도 언젠가 비슷한 일로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다. 펄롱이 그런 사람이었으며, 펄롱은 알았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 쉽게 일어난다는 것을. 하지만 그저 지나쳐 버리기엔 그가 만난 세상이 너무나 부당했다. 사제관 고양이의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훔쳐 마시는 남자아이, 창고에 갇혀 밤새 울부짖는 아이. 사제관 고양이에게 돌아갈 만큼의 행복도 이 아이들에게는 없는 불공평함, 사회의 이중성을 감사하게도 바른 눈을 뜨고 볼 줄 알았던 펄롱의 고민은 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라고 물론 후회가 없을까. 책임지지 못할 선의를 베풀지 않았을 텐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일들이 많다. 세상에 필요한 목소리는 때때로 어둡고 시끄러운 과정들을 지나야 한다. 이 책에서 그리는 수녀원의 일상이 어쩌면 일제강점기 위안부 여성들의 무거웠던 하루에 비길 수 있을 것 같다. 뉴스에서는 떠들어댄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지 않아서, 때로 역사에 무지해서 꼭 필요한 관심을 누군가의 사소한 목소리쯤으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용기 있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가해자의 사과를 촉구하고, 일생을 응어리진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기도 했으며, 다시는 불행한 과거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 되기도 했다.


펄롱의 어머니를 거두어 준 미시즈 윌슨이 그랬듯, 내면의 얼음장을 깬 펄롱이 수녀원을 탈출하려는 소녀 세라를 구해내는 모습과 같이,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움직임은 멀리서 지켜보는 이에게도 멈추지 않는 잔물결을 만들며 코앞까지 왔다. 어쩌면 펄롱은 석탄광에 갇힌 불쌍한 세라의 모습이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야 했던 과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수한 고민과 갈등 끝에 세라를 데리고 나온 펄롱의 가벼운 발걸음은 불의를 알면서도 외면하는 마을사람들의 무겁고 따가운 눈초리와 바꾼 것이었다. 내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음을 알면서도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며, 나도 괜히 마음이 찡해졌으며 나와 다른 선택지를 택한 그가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종종 어쭙잖은 선의를 베풀어 왔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것이 내 마음은 편하게 했을지언정 상대를 오히려 불편하게 했던 건 아닐까 후회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안다. 때때로 그런 호의가 그들로 하여금 부당함에 더 큰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한국어교사 자원봉사를 하면서 만난 외국인들에게, 수업을 했던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베푼 한 때의 호의. 지속하기 힘들다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했을까? 아니다. 회사에서 의사소통을 편히 하기 위해 한국어 수업을 들으러 온 외국인들이었다. 일이 힘들어도 수업을 빠지지 말아 달라, 지난 시간에 왜 빠졌냐, 타국에서 건강은 잘 챙기느냐 따위의 사소한 안부를 먼저 물었다. 수업에 나오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연락해 안부를 묻기도 했다. 경제적인 목적이 우선이긴 하지만 지금에 비해서 더 열악했던 그 당시의 노동환경 탓에 휴일이었던 수업 시간에도 종종 빠지곤 했던 그들. 그럼에도 출석한 날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눈을 부릅뜨고 수업을 들었으며,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돌아올 때에는 내 몫의 선물까지 챙겨 온 그들이었기에 내 언니 같고 오빠 같은 순박한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CD플레이어도 지나고, mp3플레이어가 호황이던 시절이었다. 조손 가정의 아이였는데 집에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도 없어 수업시간 외에는 어떤 음원의 효과도 누릴 수 없는 가정이었다. 음원을 듣고 따라 하며 공부해야 효과를 보는 언어 과목이었는데, 듣지도 못하고 쓰기만 반복해 제자리걸음인 아이가 안쓰러웠다.

내가 집에서 쓰던,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 플레이어를 가져다줘도 될지 묻고는 그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유행 지난 플레이어를 쥐고 환하게 웃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곁에서 너를 응원하는 사람도 있단다 하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 것이다. 그래도 모난 세상은 아니라 기쁘고 즐거울 일이, 행복한 대화를 나눌 날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길 바란 것이다.


펄롱도 그런 생각이지 않았을까. 세상에 네가 만난 사람들처럼 악독한 사람들만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네 스스로도 그걸 느꼈으면 좋겠다. 내가 건넨 한 손이 네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다른 한 손이 된다면 그래서 우리가 모두 행복해지면 참 좋겠다, 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아주 사소한 한 사람의 내면의 변화이며, 그 사소한 변화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낼 것이다. 세상에 흩뿌려진 용기 있는 파도가 부당하고 편협한 저 너머 세상의 파도를 집어삼킬 날을 고대한다.



24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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