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릭터

2021.12.01.

by 임루시아



글. 그림 토미 웅게러 장미란 옮김/ 시공주니어


초록색 표지와 할머니의 고운 사진의 액자 테두리가 뱀이었다는 것을 책을 덮은 후에나 알았다. 고상한 할머니와 징그러운 뱀이란 어쩐지 묘한 조합이었기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아프리카에서 파충류를 연구하는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뱀을 받았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그 뱀이 보아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크릭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어느 곳에나 함께 한다. 함께 시장에 가거나 카페에 가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입을 스웨터를 떠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크릭터를 바라보는 주변의 이상한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대단한 분이다. 요즘처럼 반려 동물을 많이 키우고 있는 때에도 뱀을 기른다고 하면 사람들은 한 번씩 더 쳐다본다. 우리는 내 일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지는 쓸데없는 너그러움은 가졌지만, 반려 동물로 강아지나 고양이 이외의 다른 동물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에는 덜 관대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 내 친구를 이상하게 보는 다른 이의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친구와 나, ‘우리’ 사이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진실로 대하느냐겠지.



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들과 나는 우리가 같이 노는 데 재밌게 놀고 싶다는 것 외에 별다른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같이 놀지 말아야 하는 이유 같은 게 없다고 표현하는 편이 좋겠다. 서로 고집을 내세우다 더러 싸울 때도 있지만 놀다 보면 곧 잊곤 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공부 못하는 친구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좋았고, 돌발행동으로 쉬이 혼나는 친구보다 칭찬받는 친구 옆에 있는 게 좋았다. 그래야 엄마 눈 밖에, 선생님 눈 밖에 나지 않고 나도 예쁨 받기 쉬웠으니까. 그러다 보면 물론 마음이 맞는 친구도 있었고, 마음을 맞추어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마음도 맞추고 싶어 맞추는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억지로도 그러기 싫었던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도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 사이에 그 어떤 조건이라는 게 필요한 걸까, 그냥 관심사가 닮았거나 함께 있으면 서로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관계가 친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아졌다. 어릴 적 아무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던 때의 친구 사귐이 오래, 깊이 무르익어 지금도 지속되는 걸 보니 더 그렇다. 뭐, 내가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 맺기에 익숙지 못하니 더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되고 내 아이에게도 하나 둘 스스로 사귄 친구가 생겼다. 아이와 잘 노는 엄마는 못되어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아이를 보면 그저 기특하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아이 친구들에 대한 편견과 거부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아이가 속상한 때가 생기더라도 엄마의 잣대로 누군가를 평가하기보다 아이 스스로 사귄 친구를 존중해 주고, 혹시 친구와 문제가 생겼을 때도 아이가 먼저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도록 멀찍이 지켜보는 편이다. 친구의 성별이나 외모, 성격, 집안 환경 같은 건 엄마들의 입에나 오르내릴 뿐, 아이에게 중요한 건 오늘 그 친구와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냐 하는 사실뿐이다.



<크릭터>에 담긴 이야기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 누구나 징그럽고 혐오스럽게 여기는 뱀이라는 동물에게 붙여진 그 혐오라는 감정도 다수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이지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사랑일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어느 때나 어느 사람에게나 나의 잣대를 들이대고 상황 판단을 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려 든다. 과연 누구를 위한 판단일까? 책을 덮으며 나도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나만의 크릭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혹시 무형의 것이더라도, 누군가 나와 그것을 이상하게 볼지 몰라도, 나는 내 의지대로 바르게 내 길을 걸어가고 싶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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