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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Aug 06. 2021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늘 그리운 나의 선생님



나를 늘 ‘참 나’라고 불러주는 분이 계셨다. 내 이름의 한자는 그와 다르지만 나는 본래 의미보다, 그 뜻으로 불리는 게 좋았다. 아마도 그건 그분이 불러주셔서 더 좋았을 것이다.

나는 글 쓰는 게 좋고, 책이 좋고, 국어라는 과목이 좋아서 들어간 대학에서, 선배들은 과 공부는 뒷전이었다. 하나같이 공무원 시험이나 토익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어린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사실은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알게 된 취업의 문은 너무 높고 좁았으며 지방의 국문과 학생이 그 바늘을 통과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학과 수업의 재미에만 빠져 있던 나는, 3학년 말에 교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돌아온 건 선택은 네 몫이라는 아리송한 답뿐이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졸업 후 취업을 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내’가 없고, 나의 성장도 없었다. 나는 늘 배우고 싶은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1년 반 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누가 시킨 적도 없지만 9시면 교수님 연구실로 출근해서 연구실 붙박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교수님은 나의 ‘선생님’이자, 두 번째 아빠로 늘 온화하게 그 자리에 계셨다. 선생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 하시면서도 늘 두 딸의 끼니를 챙기셨다. 그래서 대학원에 다니는 2년 내내 가장 많이 먹었던 건 학교 앞 중국 음식점의 자장면이었다. 점심을 먹고 함께 돌아오는 길에 교정에 핀 꽃이나 나무가 너무 예쁜 날에는 손수 사진을 찍어 주셨고, 차만 드시다 드립 커피를 처음 드시고는 “와! 맛있다.”해 주시던 소년 미도 넘치시던 선생님. 한 여름 땡볕에 시골로 학술 조사를 다닐 때도 구수하고 정겨운 선생님과의 시간이 늘 여행 같다 느끼게 해 주셨던 편안한 분. 늘 그런 분이셨다, 선생님은.

그런데 다른 학교로 진학한 후 질병 휴학을 반복하다 끝내 자퇴서를 내고 왔을 때, 나는 미안한 마음에 가장 먼저 의논하고 알려야 했던 선생님께는 정작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3년 전 선생님의 퇴임식에 초대되어 갔을 때까지. 그날, 선생님은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고 한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네가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뜻이었는지, 아쉬움의 의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따뜻한 아빠를 내 손으로 밀친 느낌이어서 그 먹먹함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받은 사랑이 너무나 커서, 더 자주 연락을 드려야 하지만 그 이후로 못난이 딸은 더 겁쟁이가 되었다. 그런데, 아시는 걸까? 종종 내 꿈에 나타나신다. 대개 내가 위태롭다든지, 기운이 없는 날. 카메라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고 계시거나, 책을 읽으시며, 늘 그러셨던 것처럼 그 쩌렁쩌렁하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 데 알아들을 길이 없어 답답하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선생님을 찾아본다. 지금도 선생님 성함 석 자를 초록창에 치면, 그 환하게 웃는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어 좋다.

지나 보니 나는 사람을 얻기보다 잃는 것을 더 잘하는 것 같다. 그래도 꽤 인복이 많은 사람인지 만났던 사람들은 대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 다행이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내가 무한 신뢰하고 따랐던 선생님.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으면 언제고 나를 ‘참 나’로 불러주신 선생님이 떠오른다. 사실 어제 대화 중에 내가 만난 선생님 이야기를 하면서 더 간절히 그리워졌다.

인생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선생님도 그러셨다. 문학이 좋아서 따라온 교수님이 알고 보니 어학 하시던 분이라 어학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지금 내 인생도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매일 부단하게 움직이고 있는 나의 길은 사실, 종착지를 모른다. 가르쳐 주셨던 학문의 깊이는 채우지 못하지만, 늘 ‘참 나’를 일깨워주셨던 말씀처럼 그저 걷고 또 걸으며 멈추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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