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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Aug 19. 2021

딸아, 우리가 어떻게 만났냐 하면

이상형



딸아이가 자라면서 종종 “엄마랑 아빠는 어떻게 만났어?”하고 묻는다. 늘 “어?”하고 얼버무리곤 했는데 요즘 들어 꽤 자주 듣는 그 물음에 나도 옛 추억에 잠시 빠졌다.

“엄마랑 아빠는 술집에서 만났는데?”

“이상하네~ 아빠는 술  안 좋아하는데.”



와! 벌써 만난 지 햇수로 11년 차에 접어드는 우리.

여름이었다.

나야 뭐, 워낙에 좁고 깊게 사람을 사귀는 편이라 친한 사람들과의 만남 이외에는 꺼리는 편인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고3 때 친구들이 너무 반갑고 좋아서 1차, 2차까지 종종 거리며 대학가 앞에서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친구의 친구였던 한 친구가 과 선배들이 함께 하자고 한다며 눈치를 봤다. 이렇게 인연이 될 줄 알았던 걸까. 이상하게 그런 자리라면 먼저 거절하고 일어났을 내가 따라나섰다.


적당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친구는 상대편 선배와 기싸움을 했고, 또 다른 친구들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검은 뿔테 안경에 하얀 피케 티셔츠를 입은 삐쩍 마른 사람. 시종일관 환하게 웃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다.

아무튼 그날 이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창원에서 다시 만났고 연애 젬병인 내가 똑같이 연애 젬병인 남자 친구를 만나서는 흔히들 말하는 썸을 탔다.

“야, 모르겠다. 몇 번이나 만났는데 먼저 말 안 하면 끝이지 뭐.”하고 돌아서려는 찰나에 손을 내밀어 준 덕분에, 지금처럼 바람결이 달라지는 8월 중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함께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고, 다른 지역으로 대학원에 다닐 때 본인 차 까지 내 줄 정도로 아낌없었던 남자다. 지금도 그런가?

나도 타지 생활에 지쳐 본가로, 남자 친구도 다른 일로 본가로 내려오게 되던 2012년 겨울, 결혼을 했다. 서툴고 모자란 대로 시작한 살림이었지만, 그래서 중간중간 삐꺽거릴 때가 더 많았지만, 남편은 지나 볼수록 진국인 사람이었다. 눈치가 빨라서 내 속을 다 알아주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웃을 때 멋진 사람이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능력 있는 남자는 아니지만, 갈수록 이런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어? 싶게 만드는 사람.



철없던 시절에 친구와 “야! 니는 어떤 남자가 좋노?” 이야기했을 때, 나는 손에 귤 향기가 나는 사람이 좋다고 했다. 뭐? 지금 생각하면 그냥 순진한 어린 날의 대답이다. 내리 귤만 까먹는 사람 아니고서야, 손에 귤 향이 나는 사람이 어디 있으려고. 그래도 가만 허울 좋은 해석을 보탠다. 내가 겨울 내내 풋풋하고 상큼한 귤을 끼고 사는 것처럼, 사람 역시 한결같이 내 가까이 머무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라고.


아직도 오빠라 부르는 게 편한, 다섯 살 차이의 내 남편. 딸아이의 질투만 아니라면 뭘 해도 함께라면 좋다. 우리 더 늙어서도 친구같이 편안하고, 다정한 사이로 오래도록 함께하면 좋겠다.


오랜만에 오글거리는 연애편지나 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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