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루시아 Nov 04. 2021

상처

말말말

느그 밥은 먹고사나? 막 결혼한 우리 부부를 앉혀두고 아버님께서 물으셨다.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게 뭐라고 그 말이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당시엔 뭐든 자신 있었던 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상처라고 이름 붙이기엔 애매하지만, 꾸준히 약을 발라 완전히 아물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딱지 같은 말이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그래도 양가의 첫 결혼이니 어른들을 모셔서 간단히 식사 겸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별일인가. 성의껏 밥과 국 정도만 내가 직접 차리거나 밖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선 다과상 정도만 내며 넘겼을 일이다. 그런데 밥은 먹고 사냐는 아버님의 말씀이 자꾸만 떠올랐다. 자취 경력 3년의 나는 인터넷만 믿고, 호기롭게 덤볐다. 이게 뭐라고 오기가 생겼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까지는 아니지만 어른들이 좋아하실만한 것으로 메뉴를 골라 아침부터 점심 식사 시간이 되기 전까지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그때는 몸이 아프기 전이라 내 생각대로 모든 게 척척 움직였다. 덕분에 이걸 네가 혼자 다했다고? 하실 만큼 푸짐한 상을 차렸다. 맛은 어찌 되었든 그날 이후로 더 이상 밥은 먹고 사냐는 말씀은 듣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내가 간과한 것은 있었다. 나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어머님 댁에 가면 재료만 던져 주시고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시는 거다. 그것도 자존심이라고 또 인터넷 레시피를 뒤적이며 음식을 하는 꼴이라니. 뭐, 그날 이후 내 무덤은 내 스스로 팠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빈번한 일은 아니니까 더욱.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생각으로 말을 하진 않는다. 듣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그 말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일 테다. 아버님의 밥은 먹고 사냐는 말씀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괜히 처음부터 밉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이 그다음 행동을 이끌었던 것이다.

나 또한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며 지내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누군가 상처 받진 않았을까, 힘이 되는 말을 해 준 적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매일 만나는 가족들, 그리고 주로 만나는 어린 친구들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보다 온기가 되는 말을 많이 했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모르겠다. 말을 할 때도 들을 때도 좀 더 긍정적인 기운으로 적어도 누군가 내 말에 상처 받지 않도록 조심히 아껴서 잘 써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딸아, 우리가 어떻게 만났냐 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