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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Dec 09. 2021

부지런함과 게으름 사이

조금 더 편안하게



게으른 아줌마야!  움직여!” 어제도 배를 깔고 누웠다가 남편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이상하게 우리 집은 남편과 내가 뒤바뀐 모양새다. 정돈된 집안에서 몸과 생각을 말끔히 하고 싶어 미니멀 라이프를 꿈꿨던  모두 옛말이다. 출근 전에 부지런을 떨어 치워 둬도 남편의 눈에 차지 않거나, 집에 잠깐 머물다  딸의 흔적이 크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둔 일감들이 잔소리 폭탄되어 내게 날아온다. 그렇다고 남편이 대단히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 나보다 나은  사실이다.


부끄럽지만 우리 집에서 나는 게으르기로는 일등이다.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앉았거나 뒹굴거리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여기 사람들이 말하는 ‘누워서 삐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가 봐도 부지런한 성격은 아니다. 정리정돈은 몰아서 하고 집에서는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며 그냥 늘어져 있다는 것이 맞겠지. 그래서 나는 ‘부지런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쩐지 마음이 간질거린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집 밖의 나는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그것도 세상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거나 미루어 두는 것이 집에서의 나라면, 밖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기도 전에 알아서 일 처리를 도맡아 하는 사람인 것이다.

글자 그대로라면 게으르다와 부지런하다는 반의어다. 그런데 저 둘이 섞인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밖에서 하는 것만큼, 아니 그 반 만이라도 집에서 하라는 말에 내 행동의 원인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요즘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도 그런대로 만족스럽다. 그런데 왜 나의 하루는 동전의 양면 같은지.

내가 생각한 아마도는 이것이다. 사람의 입이 무서워서 그 입의 칼날에 베이고 싶지 않은 악착같은 움직임이랄까. 가족에게 아무 동의 없이, 그들이 감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짐은 떠맡기고 나는 오롯이 내 욕구 충족만을 위해 달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일을 제쳐두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하지 않아서 내 마음에 찌꺼기를 남기는 것보단 낫고. 그래서 찌꺼기는 없지만 둘 사이에서 예기치 않은 스트레스를 얻기도 하는 일상의 반복. 어쩐지 공존하면 안 될 둘을 안고 살다 보니 위험부담은 고스란히 가정의 몫이 된다.


그렇다. 내 부지런의 원천은 미움받고 싶지 않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내가 만든 무덤이었다. 이제는 무덤을 박차고 나가 조금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너무 날것이지만 뭐든 적절한 양념으로 버무려야 맛난 음식들처럼 안과 밖이 골고루 섞여 더 맛있는 내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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