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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Dec 16. 2021

안녕, 나의 2021

그런대로 잘 살았다



아이 손을 잡고 걸었다. 많이 컸구나 했는데 깍지 낀 손은 여전히 한 줌이다. 여물었다고 생각한 나의 2021년도 이렇게 한 줌도 안 되는 채 영글지 못한 것들이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어제 성탄 판공성사를 위해 일주일 넘게 나의 한 해를 돌아보고 잘잘못을 따져보는데, 글쎄 떠오르는 잘못은 온통 아이를 향해 있지 뭔가. 나의 2021년 한 해는 온통 내 생각밖에 없었나 보다. 물론 나의 생이니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은 맞다만 흘러간 시간을 붙잡고 보니 그렇다. 그 외의 것들은 내가 이 바쁜 때에 왜 하필 초보운전 딱지가 붙은 저 차 뒤에 섰을까 같은 사소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는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코로나 상황에 시끄러웠지만, 생각보다 훌륭하게 첫 발을 내딛었다. 올해 꼭 쉬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었지만(쉬었다고 해서 그 관심을 아이에게 쏟았을 거라는 호언장담은 못하겠다) 두어달 아이의 등하원을 지켜보면서 참 좋은 엄마는 못되어도 아이 말을 잘 들어주는 엄마는 되어야겠다, 다짐했는데 계절을 거듭하며 그런 다짐도 점점 옅어졌다. 지금도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 엄마가 나 학원에 데리러 오고 일찍 마치는 날엔 문 열어 주면 좋겠다와 같은 소소한 바람들을 드러내지만 어제까지도 고해의 내용이 이것이었던 걸 보면 나는 그저 그런 엄마도 못 되는 건 아닐까 반성해야 될 몫이 크다. 오늘 아침 소리를 덜 질렀으니, 보속으로 주신 묵주기도까지 바치면 조금 더 애쓰는 엄마가 되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숙인다.


루푸스로 큰 이벤트도 없는 한 해였다. 매년 좋아지고 나빠지기를 반복하며 스테로이드 투약량을 늘려왔으나 올해는 무던히 한 알 용량을 유지하며 일 년째 잔병치레만 하는 중이다. 그래도 다행이지 뭔가. 내 뿌리를 흔들만한 큰 변화는 없었으니. 오늘 정기 검진 때에 스테로이드 장기 복용으로 골감소증이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으나 골괴사로 고생하시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했다. 그저 더 나은 쪽을 향하며 스스로 매일에 감사하는 밖에.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상반기에 목요일의 글쓰기를 만나 그 멤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개인적으로는 더 자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올해의 수확 중 가장 큰 것은 이것이 아닐까.  이런 소소한 쓸 거리들이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어느새 쌓인 글이 스무 편이 넘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미적거리던 나의 일상이 글쓰기 모임으로 인해 단단해졌고 덕분에 나는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표도 얻게 되었다.



예전에는 뭔가 큰 성과가 있어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또 전보다 일의 경중을 가릴 수 있는 눈이 생기면서 소소한 것들로 꿰어진 일상도 얼마나 감사하고 뿌듯한 일인지 알게 된다. 남들처럼 나의 목표는 이것이고 성과를 자랑할 만큼의 대단한 것을 이룬 것도 하나 없지만, 나는 여전히 내 삶을 살고 있고 오늘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나의 2021년도 무탈하게 제 몫을 하며 지날 것이고, 다가올 2022년도 잔잔하게 하지만 꾸준히 흐를 것을 알기에 걱정 없이 오늘 하루를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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