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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r 24. 2022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안젤라 데이비스



두드려도 열릴 것 같지 않은 벽이 있다. 그런데 가만 그 벽에 기대 보면 벽 너머에서 왁자지껄한 수다 소리도 들려오고, 어떨 때에는 조금만 힘을 주어 밀면 그 벽이 드르륵 밀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떤 때에 벽은 다른 한 공간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무심코 놓아둔 인테리어 파티션이 우리 집 공간을 달리 보이게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속한 공간을 규정짓거나 혹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태를 표현할 때도 종종 ‘벽’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쓴다.


3월에 나는 미션캠프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유병욱 CD의 카피라이팅 캠프에 참여하고 있다. 대단한 카피를 쓰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나의 관점을 변화시켜 보려는 노력이었다. 그 순간을 즐기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캠프는 어느덧 4주 차를 맞이했다. 지난 3주 차에는 나의 ‘벽’이라는 것에 대해 대단히 깊게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벽들을 쭉 나열해 보았다. 영어, 운동, 휴대폰 멀리하기, ‘아니오’라고 거절하기 등등 다 적지 않아도 이미 무수한 벽들이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이 벽이란 것이 하나같이 내 의지 하나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것들이란 생각이 든다. 태도 훈련을 할 당시에는 내가 넘어뜨리고 싶은 벽으로 영어를 골랐다. 벽을 극복하기 위한 스케줄 표를 작성해야 하는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쪽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꼭 넘고 싶은 벽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니오’라고 거절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내 고집대로 하는 것이 익숙했다. 한번 뱉은 말은 무슨 일이든 해 내야 했고, 나에게는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을 것이나 타인이 보기에는 고집, 어쩌면 아집이라 할 정도로 내게 빠져 있었으며 스스로 자신에 차 있었다. 기억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랬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갑자기 바뀐 환경 탓인지 사춘기를 겪으며 변한 성격 탓인지 나는 자꾸만 우유부단해졌다. 결정을 내릴 때도 우물쭈물, 내 의견을 물어보는데도 우물쭈물.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도 익숙해졌으며 어느 순간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상황에 떠밀려, 혹은 들어주는 편이 마음 편하겠다는 나의 결정 하에 거절해도 될 순간에도 아니오 보다 예를 외치기 바빴다. 마음은 편했지만 몸은 힘들었다.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을 빼앗기기도 했고, 내 일이 아닌데도 손을 빌려주기도 했다. 물론 지나간 모든 일에 후회는 없지만 이제는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이따금 거절하지 못해 갉아먹는 시간을 이제 조금 더 나를 위해 쓰고 싶다.


강의 중에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라는 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말을 들려주셨다.  부단히 두드리고 밀면 그 벽은 문이 될 것이며, 생각을 바꾸면 벽이 다리가 되어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어떤 벽은 내가 다른 곳으로 가닿기 위한 계단의 입구일 수도 있다. 한 번도 벽을 다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사실 어떤 벽 앞에서든 굴복하기만 했던 것 같다.

벽을 두드리는 건 넘어지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말이 꼭 와닿았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내가 충분히 넘을 수 있는 벽 앞에서 망설이거나 그 벽을 피해 다른 길을 택하기도 했다. 앞으로 더 많은 벽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까지나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일적으로 사람 만날 일이 더 많은 내 생활에서 나는 나를 위해 ‘아니오’를 외쳐보기로 한다. 흠칫 놀라는 이가 있더라도 그 말은 나에게만은 다른 시간의 문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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