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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Apr 08. 2022

이 좋은 봄날에 병원입니다

봄이잖아!


다시 병원이다. 남강뷰 명당에 다시 앉은 지 꼭 2년 만이다. 한 지인은 좋은 봄날 왜 아프냐는 말을 하셨다. 그러게요, 이 좋은 봄날.


사람들은 대개 봄날 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꽃길이나 해사한 풍경을 그리며 행복한 순간을 떠올린다. 나도 물론 적당히 따뜻하고, 또 적당히 노곤한 봄날의 꾸벅임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봄은 늘 반갑다. 오늘처럼 병원에서만 아니라면 말이다.


가장 처음 발병했을 때도, 다음에 아팠을 때도 계속, 아니 지나 보면 언제나 봄날이었다. 하루아침에 예고치 않게 찾아오는 고열을 시작으로  열이 떨어지고 다른 증상들이 사라질 때까지 비슷한 경험들을 여러  거치면서 내가 병에 끌려다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병의 증상이란 것이 전신에 걸쳐 나타날  있는 것이기에 어느  곳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스스로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의심과 주눅에 일상이 마비되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온전히 루푸스 증상만으로 입원시킨  같진 않다. 염증 수치가 정상의 100 이상이란 외래 검사 결과를 보고 당장에 입원장을 내주셨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는 지나치게 높은 염증 수치였지만  밖에도 빈맥과 흉통이 있었고, 얼굴 가득 홍조가, 눈은 새빨간 토끼의 것에 지지 않았다. 응급으로 온갖 검사를 하고, 병실로 왔을  시계는 이미 오후 2시를 지나고 있었다. 다행히 CT 심장 초음파 결과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염증 수치는 하늘 높은  모른다. 지금은 눈이 뻑뻑하고 입마름도 심한데 이게 고역이다.


대학병원에서는 대개 꽉 찬 6인실을 쓴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 저 사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당 과에 병실이 없어 타 과 병실에 머무르는 터라 더욱. 언니를 병간호한다는 한 아주머니가 바나나 두 개를 들고 와 입을 연다. 이미 오전에 루푸스 신염이 의심된다며 담당의가 신장내과에 관련 검사를 의뢰해 놓았다는 소식을 귀동냥으로 들은 터다. 나름대로 한 번의 검색을 하고 오셨는지 완치가 되는 병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니 그냥 의심으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하시면서 떨어지지 않는 언니의 열을 걱정하신다. 나더러도 고생이 많다 하시며, 언제 발병을 했는지 병원은 얼마나 드나들었는지 궁금한 게 많으시다. 나도 처음 그 갑갑한 마음을 알기에 오늘은 낯가림 심한 새침데기가 아니라 수다쟁이 아줌마의 모습으로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다. 듣고 싶은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있지만 그 이야기들은 한결 같이 건강할 때는 들리지 않았던 말이다.


좋은 봄날. 며칠이 지나 환자복을 벗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환기하게 될 날들이 진정으로 봄날이긴 하다. 이런 하루는 조금씩 일상에 지칠 때마다, 굽혀지는 것 같을 때마다 좀 쉬었다 해, 힘내 하고 토닥여주는 손짓인 것 같기도 하다. 죽을 만큼 힘들지 않아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똑똑 떨어지는 스테로이드 주사제의 냉기가 정신 차려, 인마. 봄이잖아!라고 다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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