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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y 22. 2022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는 날

넘어지는 게 두려운 나의 숙제이자 꿈

내가 오래전부터 꿈꾸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크림색 바디에 나무 바구니를 단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혹은 한적한 마을길을 누비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건 시작부터 벽, 어른이 되어서도 풀지 못한 숙제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두 발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왜? 어째서 그걸 못한다는 거죠?라고 묻는다 해도 할 말이 없다.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고 경험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종종 탓하는 기억이 있다. 7-8살 때쯤, 연립 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친척 오빠가 내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내가 네발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막 올리고 연습하던 즈음이었다. 아마 그렇게 잃어버리지만 않았으면 나는 언제라도 답답한 날엔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자전거를 다시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내 마음에 자전거를 잃어버린 아쉬움보다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더 크게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자전거를 타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번만 제대로 배우면 절대로 타는 법을 잊지 않는다는 말에 자신을 얻고 안장에 앉았지만 어렸을 때보다 더 겁이 났다. 바퀴는 더 크고 둥글었으며 넘어지면서 배운다는 자전거를 넘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으로 배웠다. 운동장 몇 바퀴를 돌고 아, 됐어! 하고 끝냈는데 정말로 그날이 끝이었다. 그래도 연애 시절 남편이 태워준 자전거에 앉아 맞던 바람은 너무 시원했다. 그 기억 덕분에 한 번 더 꿈을 꾼다.

2학년인 나린이도 아직 자전거 보조바퀴를 떼지 못했다. 부모인 우리가 게을러서일 수도 있고 엄마인 나의 두려움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매번 탈 때마다 바람을 넣는 수고를 해야 하고 좀 더 늦으면 디즈니 공주가 가득 그려진 그 핑크색 자전거를 부끄러워할지도 모르니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녀가 해결해야 할 숙제인 것은 분명하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경험이다. 그래도 지금 와 다시 자전거를 떠올리는 것은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끝나고 밖을 노닐 시간이 늘면서 오롯이 나와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그런 풍경이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숙제들을 버거워하면서도 바득바득 해 내고 있는 걸 보면 뭐든 그럭저럭 헤쳐 갈 힘은 남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몇 가지 내가 할 수 없거나 아예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언젠가 해결해 보고 싶은 숙제로 남은 자전거를 떠올렸다.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운 날 나의 상상 속에서처럼 자전거를 타고 바람 사이를 누비는 그림은 그것만으로도 미소를 머금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두려움을 떠넘기듯 아이와 나눠 갖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실패라는 경험은 다른 일에 대한 도전도 망설이게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잘 모르니, 일단 한번 덤벼보는 것이다. 그것부터 넘고 나면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숙제도 차근차근 해결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 같다.

오늘처럼 여름이 다 오지도 않았는데 답답하고 더운 날에, 이마와 등줄기에 걱정도 땀도 나눠가지고 쌩쌩 달려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괜한 말로 자전거에 다시 앉을 용기를 펌프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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