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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y 29. 2022

새벽

준비된 사람들만이 받는 선물 같은 시간



새벽은 늘 고요 속에 분주했다. 만난 계절에 따라 깜깜하기도 했고 벌써 동이 터서 환한 새벽도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잠이 너무 많아서 새벽은 어른들한테만 있는 시간인 줄 알았다.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도 겨우 지각을 면할 만큼 아슬아슬하게 도착했고 어쩌다 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신 날이면 새벽부터 부산한 소리에 귀가 아팠다. 할머니야 아침이 빨라도 일찍 주무시니까. 그런데 나는 흔히 말하는 올빼미 족이라 새벽부터 시작하는 하루는 어쩐지 피곤하고 길게 느껴졌다. 물론 그날 꼬박 밤을 지새우며 새벽을 이어가느라 이른 아침의 새벽을 다시 만나기까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게 당시로는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반쪽짜리 어른이긴 하지만, 내가 커서 만난 새벽은 어려서 알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새벽은 자발적인 시간이었다. 노력하고 꿈꾸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꿈을 만드는 시간이었고, 무수히 많은 발걸음이 앞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시간이었다. 가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과제를 하며 새벽을 만나거나, 푹 잘 잔 다음 날의 새벽에는 나도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아, 내가 뭔가 해냈구나! 혹은 나 잘살고 있구나!

일상 중에 새벽을 찾는 일은 드물고 힘들었지만, 새벽 기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값진 의미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재우면서, 혹은 온전한 나의 시간을 위해 찾아가는 모든 시간이 의미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병원에서 새벽을 맞기도 했는데 그때만은 나도 아프면서 더 자라는 아이가 되었다. 새벽은 나에게 긍정적인 시간이다. 내가 만난 새벽의 사람들은 대개 부지런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부지런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부지런히 앞날을 가꾸고 기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아주 바쁜 날이나 아무 일 없이도 뭔가에 홀리듯 새벽 미사를 드리게 되는 날이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 빛을 찾으러 나선 이들에게 한 시간 남짓한 미사는 힘들지만 감사 그 자체다. 미리 그 준비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고마워지고 함께 단단해지는 중에 새벽을 뚫고 온 몸과 마음이 한 뼘 더 자란다. 새벽을 걷고 있는 이들은 대개 그런 마음일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새벽을 맞는다는 것은 준비된 사람들의 몫이고 그들이 받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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