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늘 가장 먼저 봄의 꽃을 피우는 제주도이지만 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도 제주도의 꽃이다.
다른 지역의 봄꽃들이 모두 져갈 무렵 늦은 봄, 한라산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이 든다.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바람에 강한 털 진달래가 그 시작을 알리고 가장 늦게 피는 산철쭉이 그 피날레를 장식한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한라산이지만 봄의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이 분홍빛의 향연은 여자의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풍경이다.
한라산의 특별함은 가파르게 오르다가 갑자기 평지의 들판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곳은 이름도 예쁜 진달래 대피소이다. 풍경을 즐길 새도 없이 열심히 오르다가 갑자기 만나는 천상의 휴게소와 같은 곳.
흡사 지상낙원처럼 느껴지는 그곳에는 분홍빛 꽃의 물결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곳을 그와 말없이 나란히 걷는다. 늘 열정이 넘치고 호기심이 많은 나는 앞장서 가고 신중하고 배려심 많은 그는 나의 뒤를 조용히 따른다. 그것이 마치 우리의 인생길 같았는데 힘들었던 오르막이 잊힐 정도로 그곳은 아름다운 꽃 길이었다.
흔히들 꽃 길만 걸으세요 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행복하란 말인 듯한데 과연 꽃 길만 걷는다고 행복할까.
가파른 언덕이 있었기에 꽃 길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그 아름다워 보이는 꽃 길의 꽃들 마저도 한라산의 거센 바람을 이기기 위해 털을 세워 그리도 필사적이었다.
지금이 소중한 건 우리가 함께 오른 그 가파른 언덕 때문이다.
지금의 꽃 길이 아름다운 건 거친 바람을 이겨낸 꽃이 있기 때문이다.
전시된 이 그림 앞에서 남몰래 울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너무나 우리 이야기 같아서..."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나의 다정한
길동무.
나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