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
모든 게 다 싫어지는 그런 날이 있다. 유난히 곤두선 신경 때문에 즐겁게 나온 나들이 길이었는데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고 말았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어디 갈래 라고 묻는 그에게 '치유의 숲'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름에 이끌렸던 것일까 그냥 걷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즉흥적으로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공사가 덜 끝난 숲의 초입길은 마치 어지러운 나의 마음 같았다. 조금 더 오르자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길이 나타났다. 빛이 나무 사이로 들고 있어 더 그렇게 느껴졌다. 멀찌감치 걷고 있는 그를 힐끔 거리다 그마저도 싫어져 피아니스트 백정현 님의 제주, 숲의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바람'이란 곡을 틀고 천천히 걸었다. 바람이 느껴지는 피아노 선율을 따라 나무가 뿜어내는 초록색 숨이 나를 가득 에워 샀다. 머리가 조금씩 맑아짐을 느꼈다. 걷고 걷기를 반복하다 한 나무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부부 삼나무'
나의 눈은 바로 나무로 향했다. 곧고 커다란 두 나무는 원래 하나의 나무였던 양 손 같은 뿌리를 꼭 붙잡고 서있었다. 다투고 멀찌감치 걷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나무는 언제부터 저렇게 하나의 뿌리로 이어진 걸까.
언제쯤 우리의 뿌리는 하나로 이어질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다 이내 나무 앞에서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부부의 인연은 일백 년에 한 번씩 내려와 스쳐가는 선녀의 치맛자락으로 그 바위가 닳아서 사라지는 시간이라 했다. 그렇게나 오랜 그리움으로 이뤄진 인연이 '부부'
그렇게나 소중한 인연이거늘 망각의 동물인 우리는 늘 다투고 미워하기를 반복한다. 인간의 저장법은 컴퓨터의 저장법과 달라서 온 감각으로 다 겪고 나서야 온전히 저장이 된다.
모든 감각을 이용해 부부 삼나무를 마음속 깊은 곳에 저장한다.
온전한 하나가 되길.
같은 곳을 바라보길.
오늘 더 사랑하길 빌면서.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전체가 되는 것이다.
- 반 고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