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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pr 18. 2017

강요받은 모성애의 죽음

로버트 알폴디 연출, 연극 <메디아>

연극은 무대 뒤, 메디아의 비명으로 시작한다. 무대 위에는 메디아의 비통한 처지를 걱정 반, 재미 반, 궁금해서 견디지 못하겠는 사람들(코러스)이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절규를 듣고 있다.      


메디아는 콜키스의 공주로 자신의 나라의 보물인 황금양피를 구하러 온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아손은 삼촌이 차지한 자신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황금양피를 손에 넣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그와 사랑에 빠진 메디아는 이아손을 위해 남동생을 죽이고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한다. 메디아는 황금양피를 얻어왔음에도 왕위를 내주지 않으려는 이아손의 삼촌마저 그를 위해 죽여 버린다. 하지만 이올코스의 시민들의 반대로 이아손과 메디아는 왕이 되지 못하고 추방된다. 그렇게 이리저리 떠돌다 코린토스에 정착한다. 이아손이 마음에든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은 메디아가 있거나 말거나 자신의 딸과 이아손을 혼인 시키고자한다. 더 황당한 것은 왕이 되기 위해, 권력을 얻기 위해 평생을 살아온 이아손이 메디아의 헌신적이다 못해 모든 죄와 피를 떠안은 사랑을 뒤로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의 통보로 사실을 알게 돼 미칠 지경인 메디아의 절규가 무대 위에 가득하다.


메디아는 그를 어르고 달래도 보고 화도 내어 본다. 그들 사이에는 두 아들도 있다, 이아손은 자신의 선택을 메디아가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자신이 권력을 손에 넣는 것은 메디아와 그의 자식들을 위해 좋은 거라고 둘러댄다.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지 해낸 메디아의 영리함을 크레온은 두려워한다. 그 자신과 공주에게 해가 될 것이 두려운 왕은 메디아와 두 아들의 추방을 명한다. 모든 것을 받쳐 사랑한 이아손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메디아는 자신을 버리게 한 크레온과 그의 딸, 이아손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복수 이후의 삶을 위해 그녀를 딱하게 여긴 아이게우스의 도움을 담보한 뒤 그녀는 복수에 착수한다. 그들 결혼을 인정하고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두 아들 편에 독이 묻은 예복을 새 신부에게 보낸다. 예복을 입은 공주는 죽고, 죽은 공주를 안고서 크레온도 죽는다. 이아손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기 위해 메디아는 그들의 사랑하는 두 아들마저 죽인다. 크레온 왕가를 죽음으로 몬 메디아를 추궁하고자 그녀를 찾은 이아손은 자신의 아들들의 죽음을 발견하고 고통 속에 절규하다 메디아를 죽이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국립극단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 중 한명인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작인 메디아는 현대의 모든 악녀의 원형이다.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 복수를 위해 제 자식마저 죽게 할 수 있는 여자는 당시에도 그 이후로도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재미있는 것은 왜 영리한 여성은 위험하고 영리한 남성은 위대한 자가 되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사랑을 도구로 여긴 이아손은 용인되지만 모든 걸 내건 사랑이 비수가 되어 돌아올 때 스스로가 저주가 되기를 선택한 메디아는 독하고 악한 여자가 된다.      


이 끔찍한 비극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무대 앞뒤를 오가며 관객과의 거리를 좁게도 멀게도하며  합창하는 이들 코러스는 그 비극의 잘잘못을 따져 묻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들의 판단과 비난은 제멋대로다. 누구를 욕하는가 싶다가 금방 그의 편을 들고, 동정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천인공노의 죄인을 만든다. 그들 비난의 촉수는 결국에 제 자식을 죽게 한 메디아를 향한다.      


메디아는 오직 제가 원하는 것을 위해 움직인다. 그녀는 그 자신이 원하면 누군가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모두가 등을 돌릴지언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줄 안다. 그녀는 자유 그 자체다. 남성중심의 사회, 여성은 무언가를 이루려는 남자를 위해 존재하거나 모성으로서만 의미 있는 사회, 그 기능을 상실할 때에는 그저 요망한 것이 되어버리는 사회에서 메디아는 영리해서 두려운, 자유로워서 무서운 존재다.      


그녀가 아이들을 죽일 때, 무대 위에는 투명한 원통이 그 살인의 현장을 감싼다. 그것은 온전히 그 살인을 모두가 목도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그 살인의 현장을 보호하는 듯하다. 그 안에서 죽은 것은 어린 아들들이 아니라, 어쩌면 모성 그 자체의 죽음이다. 타인에 의해 강요받은 모성을 스스로 무참히 죽이는 메디아, 그러나 그럴 때조차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의 모성 앞에 절규하고 고통 받는다.      


메디아는 때때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코러스들의 동의를 이용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어떤 연민과 동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끝끝내 이아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메디아는 슬프지 않다.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 비극이 이야기하는 것은 사랑 때문에 제 자식을 죽인 여인의 무정함이 아니라 강요당한 모성을 스스로 끊어낸 메디아라는 상징이며,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사는 일에 대한 고통의 증거다.      


원작의 그녀는 살아남아 코린토스를 떠난다. 헝가리 국립극장 예술감독을 역임한 로버트 알폴디가 연출한 2017년 명동예술극정의 첫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연극 <메디아>는 결국 코린토스에서 그녀의 남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현대로 옮겨 온 메디아의 죽음은 남성이 중심인 사회에서 모성을 부정한 여인의 최후 같아 더 끔찍하다.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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