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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20. 2017

박제된 꿈의 기억

김소희 연출, 연극 <갈매기>

Ⓒ 연희단거리패


작가지망생인 남자는 트레블레프, 배우를 희망하는 여자의 이름은 니나다.  둘은 연인사이다. 이제 막 실험적인 작품을 완성한 트레블레프는 야외에 무대를 꾸미고, 니나를 주인공으로 하여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유명 배우인 그의 어머니 아르까디나, 그녀의 애인이자 유명 작가인 트리고린, 트레블레프의 삼촌이자 아르까디나의 오빠 쏘린, 집안일을 돌보는 안드레예브나, 그의 아내 샤므라예프, 그의 딸 마샤, 마을의 교사인 메드베젠코, 의사 도른이 모두 연극을 보기 위해 모인다.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에 모두 숨을 죽인 가운데, 아르까디나는 연극은 재미로 하라며, 아들의 진지한 무대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트레블레프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로 인해 분하다. 니나는 이미 성공한 작가인 트리고린에게 끌린다. 그녀는 이미 성공한 작가인 그가 신기하고 멋지다. 니나의 젊음과 자신을 향한 동경의 눈빛, 문학적 감수성에 트리고린도 그간 잊고 지낸 설레임을 되찾는다. 그에게 마음이 기우는 니나의 모습에 트레블레프는 견딜 수 없다. 그는 늘 꿈꾸는 갈매기 같던 니나에게 미움을 담아 죽은 갈매기상자를 보내고,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한다. 허나 자살기도는 실패로 끝나고, 니나와 트리고린은 함께 새로운 사랑을 좇아 떠난다. 


2년 뒤, 트레블레프는 작가가 된다. 그는 니나가 트리고린과 헤어지고 지방극단을 떠돌며 배우의 꿈을 이어가고 있음을 전해듣는다. 삼촌이 죽자, 마을에 어머니, 어머니에게 돌아온 트리고린이 찾아온다. 마을은 다시 한바탕 시끄럽다. 그 밤, 조용히 고향을 찾은 니나는 트레블레프와 재회한다. 그들은 지난 시절의 기억, 처음 함께 올린 무대의 대사를 읊으며 당시를 회상한다. 다시 그녀가 돌아오길 바라는 그와, 여전히 자신을 버린 트리고린을 사랑한다는 니나. 그들은 다시 한번 이별한다. 마을 사람들이 오는 소리에 그녀는 떠나고, 그도 자리를 피한다. 멀리서 들리는 총성, 의사 도른은 이번엔 트레블레프가 실패하지 못했음을 조용히 속삭인다. 


Ⓒ 연희단거리패


그는 왜 죽을 수 밖에 없었을까. 그녀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극에 등장하는 10명의 인물들은 제각기 욕망하는 것,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 트레블레프는 니나를, 니나는 트리고린을, 아르까디나도 트리고린을 사랑한다. 메드베젠코는 마샤를, 마샤는 트레블레프를 사랑한다. 안드레예브나는 아내 샤므라예프를, 샤므라예프는 도른을 흠모한다. 모두 서로 바라보는 곳이 조금씩 어긋나 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이 상대의 모습 자체인지, 그들 삶의 권태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의 투사인지, 무대 인물들은 알지 못하는 듯하다. 다만 관객만이 그 방향에 있는 것이 그들이 각기 갖지 못한 젊음, 명성과 부, 지성과 같은 것들을 향한 욕망임을 본다. 그것은 사랑인가 사랑이 아닌가. 


트레블레프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들이 다시 만나 처음 함께 올린 무대를 기억할 때, 그들이 읊던 대사가 교차하고 당시 함께했던 순간의 충만함이 되살아날 때, 그는 그들의 영혼 또한 포개어짐을 체험한다. 하지만 그 경험이, 그 기억이 나란하지 못해 한번 더 버려진 남자는, 여전히 혼자인 자신을 죽음에 버려두기로 한다.   


그의 죽음, 그녀의 버려진 사랑이 더 슬픈 것은, 그 모든 것을 뒤틀어버린 이들은 그 사실 자체도 인식하지 못함에 있다. 니나를 죽은 갈매기에 비유한 트레블레프의 상자에 트리고린은 영감을 받고, 안드라예브나에게 그것을 박제해 달라 주문한다. 다시 돌아온 그에게 박제된 갈매기를 내밀자, 그는 자신의 부탁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꿈을 좇아 육지와 호수를 오가던 갈매기는 죽어 박제된다. 그러나 그 죽음의 박제는 그저 놓여있을 뿐 누구의 기억에도 없다. 죽은 갈매기의 모습은 끝끝내 관객에게 보여지지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 비극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시키지 않으려는 연출의 위로 같다. 그것을 마주하는 일은 마치 절망을, 희망없음을 마주하는 일일테니 말이다. 


연출은 무대에 집중하지 않는 관객을 꿈꿨다한다. 무대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배우들의 얼굴, 목소리를 통해 관객들이 각자 다른 생각들을 끄집어 내기를, 그래서  무대의 비극을 통해 우리 일상의 이면을 생각해보기를 바랐다한다. 생각보다 무대는 유쾌했고 또 비극적이었다. 밀도 있는 연기에 집중하지 않기는 어려웠지만, 극장을 나올때,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무수한 질문들이 꼬리물기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 연희단거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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