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솔닛(2012), 도서출판 펜타그램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라는 유례없는 비극 앞에 기록정보관리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 사건 자체는 물론이고 이 사건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기록하기 위해 기록화에 뛰어들었다. 이건은 종례의 재난을 기록하는 방식을 뛰어넘어 세월호 참사라는 사건의 기록과 추모의 기록을 아우르며 그 사건과 관련한 예민하고 복잡한 관계망과 너무도 다른 시선의 균형, 혹은 각각의 시선을 담으려 하였다. 하지만 그 기록화 과정에 있어 추모기록에 편중되어 있다는 지적 역시 존재한다.(인용 : 이승억, 2014)
재난기록에 있어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레베카 솔릿(2012)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재난 자체의 기록, 추모의 기록을 넘어 재난현장 속에서 경험한 유대와 일시적이지만 분명 존재했던 혁명적인 공동체를 유토피아로 기록하고 있다. 사회학자의 시각으로 발견된 재난 속의 유토피아의 기록은 재난이라는 고통의 기록을 넘어서 새로운 시야를 제시함에 분명하다.
재난의 기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누가, 어떤 시점과 시각을 가지고 기록하느냐’가 기록(아카이빙) 자체일 때, 레베카 솔닛의 관점과 서술의 방식, 그가 사건을 발견하고 배치한 기준과 방법은 몹시도 새롭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재난 속에서 발견한 유토피아의 의미를 공유하고자 했는데, 그녀가 제시한 유토피아는 어떤 다른 세상, 어디 다른 곳이 아닌 그 순간, 그 지속된 시간, 기간 그리고 그 경험이 생애에 영향을 미쳐 개인과 그 개인을 둘러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건 자체 같다.
원래 이기적인 개인이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이유, 그렇게 작동하게 하는 환경에 대해서 그녀는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구조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을 든다. 구조가 작동하지 않으므로 개인의 미래는 사라지고 오직 공동체의 미래만이 존재하게 되므로, 개인은 비로소 이타적일 수 있고 공동체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재난은 시민기질을 자극하는 상황이며, 시민기질은 하나의 취향이자 지향이나, 재난 시에 발현되는 인간의 이타주의와 연대는 어쩌면 언제나 존재해 온 인간의 면모가 아니냐고 질문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재난 속에서 발견한 유토피아'를 일상으로 끌고 오는 것, 일상에 재난 유토피아를 끌어오는 것은 가능한가. 어떻게 하면 끌어올 수 있을지를 다시 질문한다. 그 해답은 아마도 인간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관계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고 암시한다.
다시 질문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란 발견인가, 그저 실재(실존)인가. 혹은 이 두가지를 모두 내재하는가. 그 질문이 보다 더 해답에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일상이 이미 재난인 사람들에게, 혹은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불행으로 여기는 이들이 넘쳐나는 지금이라서, 더욱 재난 속 유토피아의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너무도 익숙하고 빈번히 일어나는 재난이라는 일상에, 유토피아가 들어설 틈을 내어주려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의 관계들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레베카 솔닛이라는 사회학자의 믿을 수 없이 확고하고 투명한 낙관에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