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학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 김원(2011, 이매진)
작년 이맘때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하는 시민강좌 <구술사란 무엇인가> 를 수강했다. 여름이라 휴가도 끼어있고 해서 몇번 빠지긴 했지만 정말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빼먹는게 정말 아쉬웠으니까. 그때 김원 교수님을 처음 뵈었는데, 지금 보니 그분이 바로 이 책의 저자였구나 싶어 기분이 새롭다. 김원 선생님이 쓰신 책 목록을 보니 새삼 더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모두가 80년대에 빚을 지고 있다 말한다. 그래서 감히 80년대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 시대를 감당한 이들에게는 비난하는 것을 피하게 된다고들 말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는게 없으면 자기가 보는 시야 내에서만 말하게 되는 법. '인간과 기억 세미나' 수업 때 이 책을 함께 읽으며, 80년대에 대한 이해없이 그저 읽고 쓴 리뷰라 부끄럽지만 그래도 공유해본다. 공교롭게도 6.10항쟁에 읽어 더욱 의미심장.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을 이해하려면 먼저 80년대가 무엇을 기록하려고 했고 무엇을 지우려고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무엇이 80년대의 낭만인지, 그 낭만에 가려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잊혀진 것들에 대해 기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80년대를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현재의 선진화로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역사로 내러티브화된, 특정한 기억만으로 재구성되어, 그 안에 존재한 알갱이들은 잊혀지기를 강요당한 시대로 설명한다. 때문에 무수한 개인들의 기억 속에 트라우마로 존재하는 당시의 기억들이 증언되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도미니크 라카프라를 인용한다.
과거 망각이나 트라우마의 부정을 통한 성급한 긍정적 정체감이나 정상화 시도는 위험한 역사 게임이며, 역사적 상흔에 대한 정확한 기억과 진단 그리고 합당한 공공적 애도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상화는 희생자에 대한 윤리적 범죄다
작가는 우리가 그 트라우마를 말해야 하지만 동시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역시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본 서는 서문과 프롤로그, 1부 잊혀진 것들에 대한 회상, 2부 1980년대 한국 대학생의 운동문화, 3부 급진적 정치의 한계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2부와 3부에는 각기 해설이 붙어있고 에필로그 후에 보론과 부록이 붙는다.
프롤로그는 80년대 문화를 설명하기 위한 수필로서 당시 문화를 설명하는 파트로, 1부에서는 누구를 대상으로 구술을 진행하였는지, 2부와 3부에서 제목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80년대 대학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를 1부에서 언급한 17명의 서강대 81~92학번인 지인들의 구술을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기록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책의 형식적인 면을 살펴 보면, 이 책은 마치 ‘80년대 대학 공동체’라는 하나의 기록뭉치에 대한 거대한 메타데이터 같은 인상을 준다. 거대한 content and scope를 보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 메타데이터에 다시 해설이 붙는 점이다. 메타데이터의 메타데이터. 그리고 다시 보론과 부록까지, 이 책이 하나의 기록이라면 몹시 흥미로운 구조가 아닐 수 없다.
프롤로그에서는 인용을 원하지 않는 당사자들의 이름을 포함한 구술기록을 인용하며, 수필로서 당시의 문화를 설명하겠다 밝히고 있는데, 인용을 원치 않는 당사자의 기록을 수필형식으로 재구성하여 활용해도 되는가의 문제와 그렇게 가공된 수필을 기록으로 간주해도 좋은지의 문제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감한 제보의 경우 가명을 활용하여 사실관계를 밝히는 경우는 있기 때문에 수필형식은 가능해보인다. 아마도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여서 가능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기록인가 하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2부와 3부는 논리 전개 방식에 있어서도 구술을 분석하여 구술기록을 기반으로 논리를 폈다기 보다는 저자의 논리전개를 위해 구술 기록을 발췌하여 활용하였다는 인상을 준다. 연구자로서 이런 연역적 전개와 활용은 무방할 수 있으나, 기록으로서의 구술은 어떤 기록보다도 당시 구술자의 발화 환경과 정서적 요인, 앞뒤 구술의 맥락이 중요할 것이므로, 전체의 구술 기록에서 발췌하여 활용되는 기록에 대해서, 더욱이 그것이 영상이나 녹음이 아니라 텍스트로 한 번 더 전환되었을 때의 오독에 대해서는 대비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래서 본문에 활용된 구술의 전문이 궁금해지고, 영상이 있다면 더할나위가 없을 것 같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저자는 1980년 대학문화, 소위 운동권에서 말하는 민중이란 운동 엘리트가 재해석한 과거의 민중적 전통, 공동체를 둘러싼 운동 문화로서 하위문화, 그리고 대학생들이 강요받은 투쟁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실질적으로 민중담론은 80년대 억압받았던 사회 집단에 관한 담론일 뿐만 아니라 과거 민중들의 억압의 경험에 관한 전통과 기억 속에 존재한 집단적 행위자로, 미래의 행위자이자 능동적인 사회 세력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구조화된 공동체 집단이 아닌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즉 유대의 원리로 파악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위문화(subculture)로서 지배적인 사회적 규범과 질서에 대한 탈피로, 거대한 대중사회 안에서 주체로서 자신을 찾기 위한 인간적인 괴로움의 문화로, 때문에 제도적으로는 해석이 어렵고 증언, 구술 등 구술사나 경험과 삶에 관한 역사인류학적 접근으로 해석이 가능한 의미공동체로 보았다.
때문에 저자는 1980년대 대학문화를 해석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로서 구술을 활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activist, archivist’의 관점에서 미래의 아카이브는 하위문화의 아카이브일 수밖에 없다. 공공기록의 영역에서 소외된, 그리고 나아가 이에 저항하는 하위문화의 기록은 제도권 내에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앞서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구술기록의 의미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면서, 구술 기록, 구술된 역사는 인류학인가, 기록학인가 궁금해졌다. 그 경계를 짓는 것이 학문이라면, 사회과학안에서, 기록학의 관점에서 구술기록을 바라보는 시선과 인류학의 그것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라보아야 기록학적인 걸까. 구술기록이 맥락정보를 잃고 여기저기 도구화 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개인적으로는, 3장까지 이어진 어떤 구술 기록보다 부록1에 수록된 ‘1960년대 이후 사망한 열사들의 사망원인’ 목록이 1980년대 대학의 하위문화를 대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미래의 아카이브란 조금 다른 층위의 것일지 모른다.
저자가 브레히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 따라서 인용해 본다. 그의 전집에 이런 글이 있다.
“옛것과 새것의 싸움을 서술하지 말고 새것을 위해 싸워라.”
김원(2011),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 1980년대 대학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 이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