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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Jun 15. 2017

누가 나라를 먹여살렸나

전인철 연출, 연극 <국부> 초벌 리뷰


연극<국부>에 대한 감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극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박정희 대통령을 추억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제1장 향수, 그의 탄생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사실을 극화하여 보여주는 제2장 이야기, 그를 출애굽을 이끈 모세로 가정하여 보여준 제3장 신화,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그가 저격당한 그날의 사건을 반복하여 보여주는 것이 제4장 초인이다.     

 

제1장과 2장을 볼 때까지만 해도 즐겁다. 박정희 시대, 근 20년 가까이 독재를 이어온 그의 시대를 추억하는 말들, 그의 혜안이 경제를 살렸고 배고픈 것을 해결해줬다고 추억하는 많은 이들, 그와 가깝게 지낸 경호실장이나 고향 지인들의 이야기 속의 그는 내가 알던 그와 같기도 다르기도 했다. 증언을 전하는 배우들은 서사에 집중하게 하려는 듯, 성별이 바뀌기도 하고 묘하게 화자의 성격과 어긋나게 배치되어 있다. 덕분에 인물들이 한명 한명 또렷이 보여서, 그들의 발화가 더 또렷해져서 좋았다.     


제3장과 4장에 이르러서는 불편해진다. 모세라는 이름은 모두 박정희로 대체된다. 박정희는 신의 게시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끌어낸다. 그 가운데 10개의 재앙이 이집트에 내려지고 홍해를 가르고 광야로 나간다. 광야에서 신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하여 그들을 먹이는 것도 그다. 그가 기도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그를 원망하며 우상을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 다시 돌아온 모세는 노여워하며 그들을 죽이고 그 죽음을 그들의 탓으로 돌린다. 4장에 이르러서 그는 초인이 된다. 그가 저격당하던 그 밤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이들의 시선으로 사건이 매번 재해석되는 것처럼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조금씩 현장의 소리와 행동이, 시간이 어긋나는 듯 보인다. 무대 뒤의 스크린에는 박정희의 시선으로 현장을 바라보는 듯 시점 숏이 등장한다. 무대는 이 급박한 상황 속에 그가 얼마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는지를 설명한다.      


국가를 먹여 살린 아버지, 실상은 자신들이 죽어라 고생한 탓에 먹고 산 것을, 더러는 끌려가고 고문당하고 이유도 모르게 죽어갔으면서 그 공을 독재자에게 돌리는 그 심리는 무엇일까.    

  

연극의 해제에도 밝힌 것 같이, 독재에 대한 향수는 강력한 리더십과 기성세대들의 권위주의와 경제발전이 독재와 연관되어 있다는 믿음과 관계가 있다. 질서와 안전이란 누구의 관점에서 유지되어야 하는 걸까.      


박정희를 추억하는 우리 부모와 그가 죽고 나서 태어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큰 지금 우리와 그를 전혀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는 이후 세대들에게, 그의 이름은 어떻게 우리 삶 속에 존재하고 있는지, 계속 존재해야 하는지를 연극을 보고나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독재자의 망령이 건재한 나라, 그가 진정 우리를 출애굽 시켰는지, 모두를 죽인 그가 정말 영웅이고 초인인지, 우리에게 그런 초인이 필요한지, 그에게 열광해도 좋은지 생각이 생각을 문다. 우리에게 과연 초인이 필요한가, 우리는 그저 계속해서 누군가를 영웅으로 초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생각이 정리되면 리뷰를 다시한번 써볼 계획이다.

연극은 이번 주면 막을 내리니, 다들 보고 같이 고민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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