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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Jun 26. 2017

누구를 위해 경례하는가

박근형 연출, 극단 골목길, 연극<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극장 안에 연기가 자욱하다. 가수 송창식의 <병사의 향수>가 흐르고 각기 다른 시공간의 군인들이 무대 곳곳에 들어선다. 이윽고 2017년의 대한민국 경남, 1945년의 일본 가고시마, 2004년의 이라크 팔루자, 2010년 대한민국 서해 백령도의 군인들, 그들의 이야기가 능숙하게 교차된다.      


남산예술센터


2017년 대한민국 경남, 제대를 한 달 남긴 병장이 탈영한다. 탈영한 그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아파트 경비를 하는 아버지를 찾아간 그는 왜 집 주소가 달라졌는지 묻는다. 오기 부리지 말고 자수하라는 아버지,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일터에서 아비 대신 그 밤을 묵묵히 지키고 군대에서 번 얼마 안 되는 돈이 담긴 통장을 전하고 사라진다. 어머니를 집나가게 만든 사이비 목사를 찾아가 윽박지르고, 한 노숙인에게 자신의 신고를 부탁하고 헌병이 오기를 기다린다. 갈 곳도 없는 그가, 한 달이면 끝날 군생활로부터 벗어나려한 것은 왜 인가.  


남산예술센터


1945년 일본 가고시마에 가미카제로 자진 입대한 조선인 청년 오카와 마사키. 가미카제로 입대가 결정되자 이를 슬퍼하며 한 술이라도 더 먹이려는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그의 입대를 영광이라 여기며 축하하는 그의 일본인 친구 가족이 있다. 일본 땅에서 일본인이 아니라서 받는 차별과 멸시로부터 그의 가족을 지키고자 입대를 선택한 마사키는 가장 일본인다운 일본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야스쿠니 신사에 뭍이기를 원하는 그의 입대는 진정 스스로 원한 것인가.      


남산예술센터


2004년 이라크 팔루자,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군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 직원으로 파견된 서동철은, 미군의 폭격에 가족을 잃고 복수를 결심한 무장 군인들에 사로잡힌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의 파병 철회를 위해 서동철을 인질로 잡은 그들은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 조국을 탓하라며 그의 목숨을 앗아간다.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을 원했던 그와 사랑하는 이를 폭격에 잃은 무장 군인 중 불행하지 않은 자는 누구인가.     

남산예술센터


2010년 대한민국 서해 백령도 초계함의 선원들은 배가 좌초된 순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담한다. 그 시각, 누군가는 프로포즈 준비를 하고, 다른 누군가는 가족의 문제로 고민한다.  한 수병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의 목소리가 뱃고동 소리 같다며 아이를 그리워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처음엔 모두 구조된 이들의 고백인 듯하다가, 이내 그 언어들이 반복되며, 그 언어 사이사이로 슬픔과 그리움이, 그들의 죽음으로 남아있는 이들의 고통이 스며들며 그들이 이미 죽은 자들임을 알게 한다. 유일하게 구조된 안 이병은 그들 장례를 뒤로하며 그 모든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 소리치지만 관객들 누구도 그 사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모두 죽었고, 국립묘지에 묻혔다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연극은 네 개의 시공간의 서로 다른 군인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 죽음의 불행은 그들 죽음의 영문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시스템과 자신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시스템의 수혜와 그들 이익을 위해 죽어가기만 한 많은 생명들은 그들 죽음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죽어간다. 탈영병은 말한다. 이미 세상은 전쟁터고 모두는 군인이라 제대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그래서 그 전쟁터에서 한번이라도 권력을 쥐어보자 싶어 총을 들고 나왔노라 토로한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시스템은 당연하게 생명을 요구한다. 탈영병은 시스템에 속했으나 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것에 신물이 났고 그 시스템이 어디에나 있다는 것도 알아챈 듯하다. 그의 이 예민한 인식과 저항을 시스템은 용인하지 않는다. 대개 우리는 시스템에 적응한다. 그리고는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손가락질 하며, 그 부적응의 이유도 묻지 않고, 시스템의 작동원리조차 알려하지 않는다. 탈영병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질문하고 시스템에 돌을 던진다.      


남산예술센터


군인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살고 싶은 게 아닌가. 군인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으므로, 시스템이 보호하는 그 무엇이 아닌, 질문조차 통하지 않은 시스템 자체여서 불행하고, 불쌍하다. 무대는 군인들이 자신들의 말을 하는 공간으로 기획되었다 한다. 군대도 전쟁터도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죽은 이들마저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연극평론가 다카하시 히로유키는 연극<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를 보편성과 개별적인 문제들에 대한 시각이, 공연되는 나라나 지역마다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라 평했다. 일본에서, 이라크에서, 미국에서 이 연극을 만나는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누구를 위해 경례하는가, 그 모든 충성은 어디로 가는가. 아, 모든 군인은 군인이라서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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