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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Jul 27. 2017

봄과 같아서

김지나 연출, 연극<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

출처 : 연극<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 이언시 스튜디오


아직은 겨울, 이태원의 작은 방에서 한 남자가 아침을 맞이한다. 제법 어둑한 방에서 나갈 채비를 하는 이 남자의 사소한 행동들이 이어진다. 이내 그의 이름이 조 캐런스 라는 것과 한국 이름은 김봄인 해외입양아로, 한국에서 엄마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어린시절 친구, 지금은 서울에 있는 친구 우석을 만나 시간을 보내고, 엄마 찾는 일도 함께한다.


막상 엄마를 찾았으나 그를 만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는 그 복잡한 마음으로 부터 도망하고자 잠을 청한다. 그는 그의 꿈 속에서 조차도 자유하지 못하다. 그를 사로잡던 고민과 불안, 외로움이 그를 뒤흔든다. 늘 혼자라 느끼지만 여전히 그를 걱정하는 가족과 여자친구, 그리고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아침이 오고 그가 창을 열 때 그는 봄의 기운을 낀다. 그는 그 창을 통해 완전히 무대에서 벗어나 실제하는 세상으로 나아간다.


출처 : 연극<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 사진 : 김은혜


연극의 무대는 오직 조의 방이다. 그가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고르고 배를 채우고 가족과 통화하는 사소한 행동들, 그리고 관객은 그 사소한 행동 이후에 오는 허전함이 그의 얼굴에 번지는 것을 지켜본다. 그가 방문을 나서는 모든 순간은 영상으로 대체된다.  그가 길을 걷고 친구 우석과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것, 입양기관에 들르고, 엄마를 만나는 풍경은 모두 조의 방 벽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영상으로 관객과 만난다. 마치 그의 내면의 표정과 사회적인 표정의 거리를 보여주듯이, 방과 방 밖의 세계는 무대와 영상으로 구분된다.


그의 꿈은, 혹은 그의 내면에 실재하는 소요일지 모를  풍경들은 강력한 조명과 음악을 통해 공간을 휘어잡아 관객을 그의 꿈 속으로 끌어당긴다. 압도적인 소리와 색은 조의 불안과 공허함, 그리고 내면 깊은 곳의 외로움을 관객에게 전이한다. 관객은 어쩌면 그 전이가 사실은 스스로의 내면의 외로움과 조우한 것임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될지 모르겠다.


그간 무대를 보조하는 차원으로 인식했었던 영상이미지, 음악과 조명이 연극<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에서는 몹시 적극적으로 활용되며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사실 연극의 연극적인(?) 면을 더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해, 전개에 있어 영상을 많은 부분에 할애한 점이 다소 불편했지만, 결국 그 영상과 무대 간의 거리가 관객에게도 조와 조가 느끼는 것 간의 거리를 인식하게 하는 심리적인 도구로 활용된 것 같아 어느정도 동의할 수 있었다.
  

출처 : 연극<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 사진 : 김은혜


연극의 무대는 미아리고개 하부 공간에 예술극장 미인도라는 이름을 붙여 활용한 불완전한 공간에 마련되었다. 머리 위로는 계속해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벽면에서는 오가는 사람들의 음성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마치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이태원 조의 방에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외부의 소리들이 밀려왔다. 연극 해설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 불완전함은 조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무대환경의 불안정한 물리적인 요소는 관객의 집중을 불러오는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조의 불안함을 전달하는데에는 효과적이었다.


출처 : 연극<우리 사이는 봄과 같이 불편하고,>, 사진 : 김은혜


입양을 통해 낯선 피부색의 이방인으로 살던 조는 그가 태어난 도시에서도 역시 낯선 이방인이다. 언제나 이방인이라 느끼던 그의 고독은 고독을 고독으로 곱씹을 공간에서 충분히 삭혀진 후에,  봄을 맞이한다.  그의 봄은 그를 염려하는 가족들과 그로부터 비롯된 새로운 생명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겨울을 지나 맞이한 그의 봄은 낯설고 불편하지만 그를 방 밖으로 끌어내고 봄에 적응하게 한다. 늘 겨울만이 존재하는 것 같던 그의 세계에 스며든 봄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연극은 지난 5월과 6월 두달 동안 진행한 화학작용이라는 프로젝트의 일부다. 벌써 3번째를 맞이한 '화학작용'은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창작환경을 원하는 젊은 창작자들의 연극축제다 라고 그들 스스로 정의하고 있다. 연극 창작자들의 연대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연극 운동의 결실들이 이처럼 쌓여가니 응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 벌써 다음 화학작용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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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화학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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