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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Jun 19. 2017

생명으로 생명을 잇는 다는 것

황윤 감독,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잡식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 출처 : daum영화


  최근 조류독감이 돌면서 닭과 오리의 살 처분 소식이 다시 들려옵니다. 한 보도채널에서 공혈견에 관한 기사를 읽었는데, 오로지 같은 종의 수혈을 위해서만 길러지는 공혈견들이 얼마나 비인도적으로 크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연일 마음이 편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5월 봉씨네가 함께 본 영화는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입니다. 아마 이 영화를 본 탓에 그런 저런 기사들이 더 눈에 밟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잡식가족의 딜레마>는 돼지라면 돼지저금통과 삼겹살 밖에 모르는, 실제로 돼지를 한 번도 본적 없던 감독이 돼지의 사육환경에 대해 알게 되면서 겪는 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나라가 온통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떠들썩하던 때에도 감독은 사는 게 바빠서 돼지들의 떼죽음과 동물들의 살 처분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평소 동물에 관한 다큐를 찍어온 감독은 어느 날 문득 돼지가 궁금해집니다. 녹색연합과 함께 우연히 돼지농장을 찾은 그녀는 큰 충격에 빠지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돼지의 사육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가 만난 사육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불편한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돼지 공장인 그곳은 가축이 크는 공간이 아니라 제품이 생산되는 곳이었습니다. 돼지 공장의 돼지는 1년에 약 2.4회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합니다. 임신 기간 내내 몸을 겨우 세웠다 앉았다만 할 수 있는 좁디좁은 스톨(stall)에 갇힌 어미돼지는 어미돼지라기 보다는 임신 기계와 다르지 않습니다. 스톨은 유럽과 미국 내 9개 주에서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태어난 자돈은 비육돈(식용돼지)으로 길러지는데, 수컷의 경우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마취 없이 거세당합니다. 유전자조작 사료를 먹고 초고속으로 성장한 돼지는 생후 6개월 만에 도축장으로 보내져 생을 마감합니다. 밀폐된 축사, 철제바닥에서 자라는 돼지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서로 공격하는데 이때 돼지들이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꼬리와 이빨을 잘라내는 것이 관행화 되어 있습니다.


▲스툴 속의 돼지들 / 출처 : daum영화


돼지의 사육환경을 알게 된 감독은 더 이상 마음 편하게 고기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아이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역시 고민하게 됩니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될지, 단백질에 대해 알아가며 그는 비 육식을 결심합니다. 비 육식을 결심하고 보니,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푸드 코트에서 고기를 포함하지 않은 메뉴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이들이 먹는 과자에도 고기분말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 말하자 주변의 시선 역시 편하지 않습니다. 그저 육식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뿐인데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에 감독은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정말 가축이 자라는 사육환경이 모두 이러할까 고민하던 감독은 강원도 원주의 한 돼지 농장을 찾습니다. 그곳에서 감독은 돼지가 잠자리와 배변장소를 구분하고 진흙목욕과 코로 땅 파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농장의 어미돼지 십순이의 출산을 지켜보며 자신의 출산을 떠올립니다. 임신기간 동안 아이를 품고 있을 때의 마음, 출산의 고통, 아이를 만났을 때의 기쁨과 걱정 등 출산의 과정을 겪는 어미는 자신이나 십순이나 다르지 않음을 느낍니다. 감독은 십순이가 낳은 아기 돼지 중 막내에게 돈수라 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 원주 농장의 토종돼지들, 가장 아래 사진이 돈수 / 출처 : daum영화


감독 황윤의 변화는 그의 아이와 남편 영준에게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간 유독 반려동물과 야생동물만을 편애해왔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며 감독은 수의사인 그의 남편에게도 육식을 해야만 하는지 묻습니다. 희귀동물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영준은 처음엔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할 권리 역시 중요하다 외칩니다. 그는 부인의 고집스러운 태도와 그로 인해 바뀐 식단에 불만을 토로하며 카메라에 노출되는 내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냅니다. 조류독감으로 나라가 초비상인 때에 차출되어 예방과 치료를 병행하던 영준은 이런 질병들의 이면에 비인도적인 대량사육환경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내의 태도에 조금씩 동의와 긍정을 표합니다.


영화는 한 발작 더 나아가 살 처분 현장에 있었던 공무원을 만납니다. 살처분의 과정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가 질병에 의한 우려로 다시 인간에 의해 죽어나간 그 많은 동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서 그들을 땅에 묻고 자루에 담는 과정 속에 있었던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각한 경우 목숨을 끊는 사례도 있었다 합니다. 진천군의 한 공무원은 고백합니다. 자신이 명령에 의해 얼마나 더 잔인한 일까지 할 수 있을지, 그래도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힘들었다고 말이지요. 그 질문은 우리에게도 유효할 것 같습니다.


▲ 원주 농장의 유기농 당근밭. 돼지의 분뇨를 거름삼아 큰 당근은 다시 돼지의 사료가 됩니다    / 출처 : daum영화


이 영화를 함께 보며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너무 많은 소비에 대해서,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더 많이 먹고 또 버려지기 위해 공장식으로 이루어지는 축산, 그 사이에 동물권과 생명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불편한 진실을 알았다 한들 우리의 소비가 과연 줄어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었습니다. 이미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가 소비 철학을 바꾸고 생명에 민감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알기 때문입니다.


공장의 가축들에게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저 숫자로 불리우는 동물들은 상품이므로 최적의 이윤을 내기에 적합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관리될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저 모돈과 자돈으로 불리어 그 용도를 다합니다. 이름을 가진 돈수의 죽음은 돈수의 죽음이라 명명되지만 이름이 없는 돼지들의 죽음은 그저 식용으로의 전환일 뿐입니다.


가축의 성장환경은 안전한 먹거리와도 연관됩니다. 좁은 돼지우리 안에서 급성장을 시키 위해서는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이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이름도 어려워 부르기 힘든 수많은 약품들을 투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좁은 우리 안에서 스트레스로 가득한 동물의 살이 우리 몸에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입니다.


십순이의 출산을 지켜보며 생명의 탄생의 과정에 대해 여성으로서 느끼는 감정도 남달랐습니다. 임신이 생명의 탄생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 생명을 이용할 목적으로 도구화 될 때의 불편함. 임신을 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돼지발정제와 인공수정 도구를 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습니다. 감독이 자신의 출산과 십순이의 출산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연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엄마돼지 십순이가 출산 후에 젖을 먹이는 모습 / 출처 : daum영화

 


엄마로서 아이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엄마의 선택이 아이에게는 선택권을 앗아가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부모의 태도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안아키’라 하여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와 관련한 뉴스도 떠올랐습니다. 가족 안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원봉사센터에서 일하는 자원봉사 관리자들이다 보니 ‘관리’라는 용어에 유독 민감해집니다. 돼지는 관리의 대상이 되는 순간, 말 그대로 관리되어 집니다. 생명이 아닌 상품은 관리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리해야 할 것은 생명 자체가 아니라 공정이며 때문에 그 공정이 생명을 위해 최소한의 것들을 보호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우리는 전염병으로 오염된 토양으로 되돌려 받습니다.


▲ 돈수와 우리에서 노는 감독의 아들 도영 / 출처 : daum영화


우리는 이날 불편한 마음을 함께 공유하고, 작은 실천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실천이 쉽지 않으리라는 고백과 이러한 철학과 태도 자체가 강요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토로했습니다. 동시에 이런 철학을 가진 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도 우리의 업무현장에서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동물권에 대한 법률이 발의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감독과 아들은 돈수에게 먹이를 주며 대화를 나눕니다. 아들은 돈수가 이제 곧 해골이 되냐고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는 돈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럼 돈수의 마음이 상할 거라고 말이지요. 생명과 생명간의 교감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극 중 나비족의 네이티리가 짐승들을 먹이로 삼기위해 죽이면서, 그 죽음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를 표합니다. 마음 깊이 그 생명으로 자신의 생명이 이어짐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관련한 몇 가지 영화를 더 추천합니다. 공장식 축산에 관한 영상 중에 눈여겨 볼만한 작품으로 <미트릭스>가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데, 다음의 링크로 이동하면 볼 수 있습니다.https://youtu.be/vX2VxXdYbYI


다른 한편은 르네 랄루 감독의 1973년작 <판타스틱 플래닛>. 푸른 거인이 지배하는 행성에서, 작은 인간들이 애완동물처럼 취급되는데, 인간과 거인들의 갈등을 다룬 애니메이션입니다. 1973년 작임에도 신선하고 생각에 전환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잡식동물인 우리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딜레마가 전혀 없던 이전보다 한번 정도 고기를 대하며 생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상 속의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 이상은 봉씨네 2차 모임(5/27) 후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봉씨네는> 자원봉사 이음의 소모임 봉씨네는 자원봉사Bongsa와 영화cine의 합성어로, 자원봉사 현장의 실무자들이 영화를 함께 보고 깊이 읽어보는 영화해석모임입니다. 구성원들의 추천으로 영화를 선정하여 두 달에 한번 함께 영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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