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롱 Mar 31. 2017

자원봉사 실무자의 눈으로 본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로치 감독,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칸영화제에 무려 12회나 초청된, 79세의 나이가 되기까지 노동자의 삶과 일상을 꾸준하고 힘 있게 다루며 위로와 시사를 던져주어 거장 반열에 오른 영국 감독 켄 로치의 작품입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 daum영화


속 깊게 줄거리 읽기    

다니엘 블레이크는 일평생을 목수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의사로부터 회복될 때까지 일을 쉴 것을 권고 받습니다. 일을 쉬는 동안 생계를 꾸리기 위해 질병수당을 받으려 하나 거동이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수당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안으로 제시된 실업급여 받는 일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수급관리공단에 방문한 다니엘은 그곳에서 동네에 이사와 길을 헤매다 심사에 늦은 케이티를 변호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케이티는 초등학생인 데이지와 딜런을 홀로 키웁니다. 런던에서 집을 잃고 쉼터를 전전하다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사정을 알게 된 블레이크는 낡아 고장 난 그들 집안 곳곳을 수리해주고 데이지와 딜런과 놀아주며 힘이 되어줍니다. 지각으로 인해 생계수당을 지원받을 수 없게 된 케이티는 청소 일을 구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케이티 자신은 식사를 거르면서 아이들을 먹이고 고마운 블레이크에게 식사를 대접합니다.      


블레이크는 실업급여를 받기위해 수급관리공단의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한 번도 컴퓨터를 다뤄본 적 없는 그는, 모두 온라인으로 변해버린 절차와, 연결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전화 상담에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절대 포기하기 싫은 다니엘은 이웃 청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신청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다시 구직활동을 해야 합니다. 일을 하면 안 되는 블레이크지만 구직강좌를 듣고,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아 손으로 쓴 이력서를 들고 업체들을 돌며 이력서를 냅니다. 그 상황을 딱하게 여긴 업체에서 그를 채용하려고 하나 일을 할 수 없는 몸 상태인 블레이크는 욕을 먹어가며 채용을 거절합니다. 형식을 갖추려고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담당자는 구직 활동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내립니다. 블레이크는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취하기 위해 이토록 수치를 당해야 한다면, 차라리 자존심을 지키고 수당을 받지 않겠다 선언합니다. 그렇게 건물을 나온 블레이크는 공단의 외벽에 크게 자신의 이름을 써 넣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라고, 나는 내 존엄을 지키고 싶고, 그러기 위해 공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그의 액션은 잠시나마 지나는 이들의 동의를 얻지만 이내 곧 경찰에게 잡혀갑니다.      


케이티는 여전히 구직이 쉽지 않습니다. 음식배급소에서 음식과 생필품을 가져다가 연명하는 수준의 날들이 이어집니다. 데이지는 배급받는 일로 친구들에게 놀림 받은 것과 자신의 신발이 찢어졌음을 엄마에게 전합니다. 그 순간의 속상한 엄마의 마음은 헤아리기가 힘듭니다. 돈이 필요한 케이티에게 성노동의 제안이 들어옵니다. 언제나 타인의 어려움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블레이크는 그녀의 마음을 돌리고자 애씁니다.        


실업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 블레이크는 밀린 공과금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될 만한 집안의 가구들을 팝니다. 사별한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것들을 파는 그의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병은 몸의 병도 깊어지게 합니다. 절망한 블레이크에게 이번엔 데이지와 딜런, 케이티가 도움이 되고 싶어 합니다. 블레이크가 그들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듯이 자신들도 힘이 되고 싶다 고백하며 그의 손을 잡습니다. 그는 용기를 내어, 그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받아야 하는 질병수당의 지급부적격 심사에 항고하기로 합니다. 항고 변론 당일, 긴장한 블레이크는 재판소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죽고맙니다. 영화는 그의 장례식에서 그의 변론문을 읽으며 끝을 맺습니다.     


블레이크가 상담전화 대기음과 씨름하는 것, 공단 담당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블레이크가 일을 쉬게 되면서 겪는 일련의 사건들, 그 과정 속에 이웃들과 서로 의지하며 생을 이어가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존심을 빼면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지 묻던 블레이크의 질문이 계속 머릿 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영화 속 바로 이 장면  

급식소에 주저 앉아 우는 케이티와 위로하는 다니엘 Ⓒ daum영화


배급을 받으러 급식소에 온 케이티는 너무 오래 굶어 물건을 고르다말고 스프캔을 따서 손으로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습니다. 허기로 인한 자신의 행동이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게 되자 부끄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블레이크는 말합니다.      

 

“괜찮아요,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그리고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This is not your fault !!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비참함을 견뎌야 하는 일의 잘못이 생명 자체에 있지 않다는 그의 위로에 눈물이 났습니다. 생명 자체가 고귀한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수치심을 견디는 것을 당연한 대가로 여기는 건 아이러니 합니다. 급식소에서 활동하던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태도, 생리대와 같은 여성용품이 생필품으로 분류되지 않아 배급이 되지 않는 문제, 아이들의 음식 대신 차마 여성용품을 살 수 없어 훔쳐야 했던 엄마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영화 속 바로 이 질문

다니엘, 케이티, 딜런과 데이지가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 daum영화

    

전학으로 속이 상한 딜런에게 블레이크가 말을 붙입니다.      


“코코넛과 상어 중에 뭐로 사람이 더 많이 죽을까”      


마음이 좀 풀린 딜런이 어느 날, 불쑥 대답합니다.


“코코넛이요!”


블레이크는 정답이라 말합니다. 그 이후로 영화 안에서 이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상어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위험에 대한 경고와 알림을 하고 해양구조대도 구성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떨어지는 코코넛에 맞아 죽는 사람은 그보다 몇 곱절이 되지만 코코넛의 위험에 대해서는 누구도 경계하지 않습니다. 귀여운 코코넛의 외모 탓일 수도 있고 너무나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사고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죽게 하는 위험의 정도가 상어보다는 코코넛이 강하다면, 게다가 그 위험의 출몰이 훨씬 빈번하다면 무엇을 위험요소로 인식하고 대비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감독은 우리 삶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상의 것들을 평범한 질문을 통해 은유합니다.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블레이크이고 이에 대해 답을 하는 이가 딜런인 점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앞선 세대가 뒤를 이어갈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더 경계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것 같달까요. 전 세대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나오며  

사람을 위해 종사해야 하는 시스템(관리)이 언제부턴가 사람을 조정하고, 급기야 시스템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 더 웃픈 것은 그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실무자들은 시스템을 관리하느라, 그 관리 원칙을 지키느라, 애초에 무엇을 위해 이 시스템이 나왔는지를 잊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니엘이 공단의 벽면에 써 넣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이름의 선언은 시스템으로부터 개인을, 원래의 주체이자 목적인 사람을 시스템 밖으로 꺼내는 행위로 읽힙니다.      


시스템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이를 위해 일하는 실무자들의 정체성이 시스템의 관리에 있지 않다면, 다니엘 블레이크의 선언 앞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고민이 고민에 머무른 채 끝나서는 안 된다고, 그 고민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더 나은 해답들이 계속 갱신될 수 있는 액션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평범한 이웃사촌, 당신은 내게 영웅입니다“     


영화의 카피는 말합니다. 영웅은 지금 여기의 나의 문제에 손을 내밀어준, 내 곁의 이웃이라는 것.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고 그 장치가 돌아가는 과정자체가 인간의 존엄을 위한 것임을, 그 사이에는 어떤 수치심도 끼어 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새삼 다시 발견하게 해준 영화였습니다.    



* 이상은 '봉씨네'의 멤버들이 함께 영화를 보고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자원봉사 이음의 소모임 봉씨네는 자원봉사Bongsa와 영화cine의 합성어로, 자원봉사 현장의 실무자들이 영화를 함께 보고 깊이 읽어보는 영화해석모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의 해변에서 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