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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24. 2017

밤의 해변에서 혼자

On the beach at night ALON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보지 않으면 알수 없다. 내러티브만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보지 않고는, 때로는 보고나서도 완전히 알기 어려운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영희는 유부남 영화감독을 사랑한다. 너무 괴로워 이별을 고하고 독일의 지인에게 와 지내는 시간이 1부, 귀국해서 강릉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며 꿈을 꾸는 것이 2부다. 이것은 1부와 2부 같기도 하고, 각기 다른 2개의 영화 같기도 하다. 이것은 그저 1 이고 2 이다.


1부와 2부에는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등장하다. 그는 영희 앞에 나타나 확인 할 길 없는 시간을 묻고, 갑자기 공원에서 불쑥 나타나기도 하며, 급기야 해변에 서 있던 영희를 메고 가버린다. 1부의 그는 영희와 사람들에게 인식되지만 2부의 그는 관객에게만 인지 된다. 마치 그는 영희의 시간 같다. 이별하고 독일에서 깊어지고 깊어진 시간이 영희 곁에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그는 영희의 숙소에서, 바다가 보이는 창을 닦고 또 닦는다. 영희가 더 멀리까지 더 잘 볼 수 있게 하려는 것처럼. 창 닦기를 마친 그는 창 밖에 서서 바다 끝을 바라본다. 영희도 그의 지인들도 모두 그를 보지 못하지만 그는 분명 거기에 있다.



배우 김민희의 연기는 정말 강력했다. 그 슬픔과 혼란, 자존감과 사랑의 감정, 애씀과 무너짐의 감상이 그의 얼굴 안에 고요하고 동시에 강하게 흘러간다. 그 흐름에 아무도 대항할 수 없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어조를 강하게 하며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제발 입 좀 다물라는 영희의 발언에, 어찌보면 무례할 수 있는 그 요청에 왠지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을 가진이가 없다는 것, 진짜 사랑이란 받을만한 자격을 갖은 이들의 것이므로, 그래서 우리는 다 가짜 사랑을 하며 만족한체 한다는 직언이 아프다.


그녀가 봉봉방앗간 앞에서 부르는 노래,

그녀가 해변에 누워 꾸는 꿈,

꿈 속에서 그가 건내는 소설의 단락,

술집의 벽에 걸려 안주가 되어준 시가

모두 사랑은 그냥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 후회하고 후회하고, 매일을 후회하면, 그렇게 지겹도록 후회하면, 나중엔 후회가 없으면, 후회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단 그의 말은, 마치 후회와 함께 놓쳐버린 사랑의 존재조차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죽도록 외로워, 그 외로움이 절정을 이룬 순간의 쾌감까지도 껴안았으므로.


그녀에게는 그 순간부터, 이별의 때부터 어두운 밤이었던 것 같다. 그 깊은 밤의 한가운데, 해변에 혼자 누워 희망을, 사랑 외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응답을, 꿈꾼다.


꿈에서 깬 그녀는 해변에서 일어나 모래를 털며 괜찮다 말한다, 밤의 해변에 혼자여도 그녀는 괜찮다, 그녀는 다만 진실하게 곱게 늙어 사라지고 싶을 뿐,


김민희라는 배우와 극 중 영희를 떼어놓는 건 불가능하며 무의미한 시도다, 그건 영희와 배우 김민희의 사정이 같아서 때문이 아니라, 김민희라는 배우 또는 사람의 매력이 영희 라는 캐릭터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지만 다른 배우로 대체될 수 없는 영희가 있기에 가능했다.


영화 외에 다른 판단은 내 몫이 아닌것 같아 더할 말이 없다. 개인에게 진짜가 아닌 사랑이 어디 있겠냐만은, 진정 진짜 사랑의 경험을 해본 누군가라면, 이 경험 앞에 서서 덤덤히 견뎌내는 영희의 모습에 간이 아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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