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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그 멀고도 가까운 거리

<비포 선 라이즈> , <비포 선 셋>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까지

by 영롱
'사이' 라니 이렇게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말이 있을까


'사이'라는 단어의 온도를 생각해 본다. '사이'라는 단어의 온도는 가늠되지 않는다. 당신과 나 '사이'의 온도가 쉽게 가늠되지 않듯, 지나간 과거와 현재의 '온도' 차이를 감당할 수 없듯, 우리는 늘 그 간격의 '사이'에서 번민하고 만족한다. 그래서 이 '사이'라는 의미만 잘 감당하며 살아도 우리의 인생이 조금은 결을 달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비포 시리즈의 완결편?인 영화 <비포 미드나잇>


2013년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을 개봉하며 아마도 일단락된 비포 시리즈는 관계와 시간 '사이'를 잘 녹여낸 영화다.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와 에단 호크(제시 役), 줄리 델피(셀린 役)가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1995)>, <비포 선셋(Before Sunset, 2004)>에 이어 18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시간과 관계를 작품안에 녹여냈다. 20대를 비포시리즈와 함께 보내고 어느새 30대를 살며 중년을 생각하는 지금, 제시와 셀린의 시간은 타인의 시간이라기 보다 나의 시간 같다.


<비포 미드나잇>의 제시와 셀린은 이제 늙고 배나온 중년의 여느 부부와 같다. 빛나던 순간과 서로를 그리워하던 시간은 이미 우주 저편에 가있는 듯 현실을 살고 있는 입담 좋은 부부. “Happinese is in the doing. Not in the getting what you want.”라고 고백하던 그들은, 영원히 그들 사이에서 사라져버릴 뻔 했던 시간을 잡아채기로 했다. 그렇게 비행기는 떠나고 그들은 남았다.(비포 선셋) 지금 그들은 해질녁 그리스의 카르다밀리 해변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해가 아직 저기에 머물러 있음을, 그렇게 머물러 있다 저물어 갈 것임을 이야기 한다.


“still there, still there, ... gone.”


지는 석양빛을 나란히 앉아 바라보며 던진 대사가 꼭 그들 삶의 모습 같고 또 우리의 모습 같다. 서로에게 자기 자신을 빼앗긴 듯 서로를 갈망하던 그들도 삶이 라는 시간을 감당하며 '사이'를 실감한다. 서로의 '사이'에 존재하던 간절함과 그리움은 이제 서로에 대한 익숙함과 견딜 수 없음으로 변해 버렸으니 말이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면서 서로를 사랑한다는 건, 서로의 찌질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니, <비포 선셋>에서 <비포 미드나잇>에 도달하기까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시간 '사이', 그들은 정말이지 치열하게 시간을 살아냈을 것이다.


이제 그들 '사이'에 남은 건 무엇일까.


영화 <비포 선라이즈>, 포스터만 봐도 설렌다 ㅠ _ ㅜ


그들이 처음 만나 아침을 맞이하기 전, 셀린은 말한다. (“비포 선라이즈 Before Sunrise” 中에서)


난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아. 그러나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너나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존재 할 것 같아. 이 세상에 신(神)이 있다면 그 신은 너와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할거야.


나 역시 우리가 믿는 신이 나와 당신의 사이에 존재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신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또 서로를 통해 자신의 신을 보지 못한다면 신을 믿는 우리의 삶이라는 게 너무 위선적인 셈이니까. 그 '사이'를 존중할 수 있고 그 '사이'에서 우리가 믿는 신을 함께 읽는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 같다.


푸르름이 터질 것 같던 시절에 처음 만나, 자신들의 불안과 사랑에 대해 밤새 쏟아내며 아침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 사이, 두 사람은 따분하던 삶에 생기를 되찾고 서투른 삶을 서투른 채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을 것이다. 해가 뜨기 전 함께 했던 이들은 해질녁을 함께 하고 또다시 올 아침을 향해 밤의 가장 깊은 어둠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렇게 다시 밤의 한가운데에 설 그들은 깊고 깊은 어둠의 한복판에서 서로의 지난 기억을 자양분 삼아 삶을 이어가야 한다.


사진출처 : Daum 영화


'사이'의 다른 말은 추억일까.


“Memory is a wonderful thing if you don't have to deal with the past.”

(“비포 선셋 Before Sunset” 中에서)


기억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으면, 그리고 그것을 현재와 잘 조율해 낼 수 있다면 , 우리는 아마 그 '사이'를 잘 살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시와 셀린의 '사이'도 그렇게 존재한다. 설레임의 시간과 기다림의 시간, 이제 함께 하며 그 추억과 현재를 영민하게 묶어가며 그들 '사이'를 지탱한다. 쉼없이 살아낸 '사이'들을 끊임없이 다시 정의하며 관계가 익어가도록 애를 쓰고 애를 쓴다. 그렇게 무너졌다 일어나고 추억과 현재를 비벼내며 다시 웃고 한 방향을 향해 나란히 앉는다. 그리고 이제 애쓰기보다 다만 삶의 '사이'들이 지나가도록 바라볼 줄 알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그들은 그리스의 카르다밀리 해변에 나란히 앉아서 지긋이 바라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석양 너머로 모두 사라질 때까지.

자신들의 삶이 태양과 함께 저물때까지.


just passing 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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