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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Nov 01. 2017

일상으로 부터

아베 코보 원작, 임선경 연출, 무용극<모래의 여자>

출처 :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무용극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Abe Kobo) 원작, 임선경 연출, 김재승 안무, 마홀라 컴퍼니


남자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모래에만 서식하는 곤충을 잡겠다며 모래땅으로 떠난다. 모래언덕에 있는 마을에 하루 유숙하기로 한 남자를 마을 사람들은 지하에 깊이 파인 구덩이로 안내한다. 모래 구덩이 집에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계속 쏟아지는 모래를 걷어내면서 남자를 대접한다. 이튿날 남자는 구덩이를 나가려한다. 올라가는 사다리는 보이지 않고 아무리 찾아도 밖으로 나갈 길이 보이지 않음을 발견한다. 구덩이에 갇혀버린 남자에게 여자는 모래를 매일 매일 퍼내지 않으면 집이 모래 파묻히게 되고 그러면 마을 전체가 무너질 거라며 모래를 퍼내야 한다 말한다.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찾아온 모래땅에서 더 끔찍한 일상에 빠져버린 남자. 남자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내 다시 붙잡혀 돌아온다. 그러다 우연히 물을 끌어올리는 장치를 발명한 남자는 이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탈출이 가능해졌지만 이를 미룬다. (민음사 <모래의 여자> 소개글 참조)     


일본의 전후작가를 대표하는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는 일상으로부터 도망하기를 원하는 한 남자가 또 다른 지독한 일상에 갇혀 자유를 갈구하나 막상 자유를 선택할 수 있을 때 그것을 보류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상이란 무엇이며, 자유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이 작품은, 작가에게 일본의 카프카라는 수식어를 선사한 작품에 걸 맞는 초현실적인 수법의 정수를 보인다.      

 

출처 :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무용극<모래의 여자>는 원작 소설의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무대 위의 남자와 여자,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연출노트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무용, 연극, 음악적 언어를 걷어내고 오직 소리와 몸짓이라는 정직한 이미지로서, 정보나 뜻의 전달 보다 감각과 직관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획 단계부터 연기를 하고 싶은 무용수, 움직임에 관심이 있는 배우를 모집하여 연기, 움직임, 음악 워크숍을 각각 진행하고 각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다.      


무대 위의 남자와 여자는 그들의 몸짓으로 그들이 모래 속에 갇혔음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함을, 그들이 느끼는 고통을 혹은 그저 일상을, 그리고 그 너머의 욕망을 표현한다. 보다 본질적인 것을 전달하고자 몸짓과 소리로만 구성된 연극을 보며 가장 1차원적인 몸짓이라는 언어를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못하는지, 누군가에게는 몸짓이 본질이 아니라 기호로 다가오지는 않을지 고민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우리의 몸의 언어로 과연 본질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출처 :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모래로 가득한 지하 마을이라는 판타지는 매일을 사는 우리 현실의 반영이다. 모래를 매일 파내는 일의 반복이 지겨워서, 그리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하겠어서 모래를 파내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모래를 파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렇게 해야만 하는 주변의 시선과 규칙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막상 남자는 그가 일상으로부터 탈출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리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 때에, 오히려 관계를 선택하며 자유를 보류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도망하려고 하는 것은 그저 자유롭지 못한 상황 자체인 것인지, 일상인 것인지 다시 묻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란 무엇인가.      


소설의 첫 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어디에 정착하고 어디로 옮겨갈 것인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을 벌이라 여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상이라는 자유는 과연 가능한가. 무대위의 몸짓은 우리로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무용극<모래의 여자>는 마홀라컴퍼니가 서울국제공연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으로, 히브리어인 마홀라, 신 앞에서 춤추는 자들이라는 의미대로, 신 앞에서 우리의 일상의 의미와 자유라는 욕망의 본질을 몸의 언어로, 진실한 언어로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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