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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08. 2018

경계 앞에서

작/연출 최진아, 극단 놀땅, 연극 <선을 넘는 자들>

어둠속에서 한 남성의 처절한 외침이 들린다. 그는 부르는 듯 혹은 물리치려는 듯 뱃속 깊은 곳으로 부터 ‘어둠’이라는 단어를 끌어내어 외친다.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도 인지하기 어려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둠의 이름을 부르며 연극은 시작된다.  



무대에 빛이 들고, 어둠을 외치던 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어둠과 추위, 배고픔을 견디며 남으로 향하는 북한군 김 군은 남조선에서 잘 살아보고 싶어서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감당할 수 없는 부채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중년 남성 정씨는 불륜 상대에게 대출사기를 종용하다 차라리 월북을 꿈꾼다. 가족들과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목숨을 걸고 사선을 건너온 탈북자 송영수는 매일같이 돋아나는 혐오와 차별에 지쳐 다시 탈남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연극은 이 세 인물의 삶을 교차하며 각자가 딛고 있는 선 안에서의 분투, 그리고 그 경계에서의 처참함과 선을 넘어서 겪는 아픔을 그 주변의 인물과의 관계, 무대를 나누는 면과 선들, 그리고 빛과 어둠(조명)을 통해 보여준다.  


무대는 연극이라는 형식이 갖는 이점을 너무나 잘 활용하고 있다.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을 한 공간에 밀어 넣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무대 위에 실존하게 하며, 그 고통과 아픔이, 그래도 살아가려는 인물들의 의지가 공간속에 촘촘하게 들어찬다. 경계로 인해 고통 받는 인물들의 감정은 어떠한 장벽 없이 고스란히 객석에 전해진다.



선, 경계 그 너머의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뭘까.


우리(?)는 참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일 테고. 그 안에서 더 연대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비슷한 특성들을 뽑아내어 친밀함을 꾸민다. 그렇게 ‘우리’를 만들려고 지어낸 선은 우리의 이름(정체성)이 되고 우리를 설명하는 규정들이 된다. 하지만 이 선들은 반대로, 선을 넘어선 자들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뺏고 친밀함을 박탈하는 기준이 되어버린다.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선을 넘은 사람들. 선을 넘은 이후의 삶이, 너무도 두렵고 불안하지만 선을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로 내몰려서, 탈출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경계 앞에 선 사람들.


김 군의 독백 중 이런 대사가 있다.


“......그냥 죽을 수 없어서 이 선을 넘기로 한다. 이것은 죽으려는 것일까, 살려는 것일까......”


살기위해 사선(死線)을 건너는 일, 그 절박함.


절박함으로 선을 건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예상대로, 또는 예상보다 더한 오래되고 묵어진 편견이다. 이 묵은 편견들은 생활 깊숙한 곳 까지 파고들어 일상을 자잘하게 조각낸다. 한번 떠나온 자들은 다시 그 선 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땅에 정착하지도 못한 채, 소수자라는 선 밖으로 밀려난다.


소수자가 된 이들은 자신들의 소수성을 상품화하며 자기혐오를 겪거나, 혐오와 차별의 일상을 견디거나, 또 다시 경계를 넘을 준비를 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선을 넘는 일을 선택한 자들은 오히려 그들 가장 깊은 곳에서 그들을 지탱하는 근간이 균열됨을 느낀다. 숨 쉴 때마다 스스로의 존재를 물어야 하는 피로로 그들은 하루하루가 숨차다.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이 캄캄한 곳에서 우리는 어째야 할까. 나는 정말 선 안에 있는 자일까. 그 선은 영원할까. 내 앞에 어두움이 가득 찰 때,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할까,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각자의 삶 속에 놓인 그 무수한 선들 앞에서, 그저 내몰리지 않기만을 바라고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예측불허하고 인간들은 너무도 잔인하다.


한편으로는 그런 기대도 해본다. 더없이 늘어나는 선들이 오히려 경계를 무의미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선은 이제 의미를 잃고 모두가 그저 한 공간에만 존재하는 날이 올 거라고.


다시 첫 장면을 떠올린다. 자신 앞에 놓인 어둠을 부르며, 자신이 직면한 불안과 두려움에 이름을 붙여, 어둠 속을 돌파하려는 그의 비장함.


경계와 선에 대한 개념 없이 멋대로 타인의 삶을 망가뜨린 자들을 향해 외치는 미투(#me too)운동이 한창인 이곳이라서, 경계 앞에서 처절하게 고민하고 살아감에 대해 분투했던 <선을 넘는 자들>의 그 결단과 행동은 그래서 더 고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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