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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y 16. 2018

끝끝내 실현한 효라는 마음

연출 손직책, 작창/도창 안숙선, 창극 <심청가>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음악극을 창극이라 한다. 국립창극단은 2012년부터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의 판소리 다섯 바탕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으면서, 동시에 소리의 핵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창극 <심청가>는 국가무형문화재 안숙선 명창을 통해 6시간이 넘는 판소리 심청가가 2시간가량으로 각색되어 관객을 만난다. 심청의 이야기는 소설 <심청전>으로 익숙하지만 판소리 <심청가>를 완창으로 들어본 이는 손에 꼽힐 것 같다. 그 익숙한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 옛적에 황주 땅 도화동에 맹인 심학규와 그의 아내 곽씨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사십이 넘도록 아이가 없어 지극정성으로 공양을 드려 딸 청이를 얻는다. 산후조리를 변변히 못한 곽씨 부인은 난지 칠일된 청이와 눈먼 지아비를 두고 세상을 떠난다. 심학규는 절망하지만 청이를 젖동냥하며 키운다. 청이는 십여 세가 되자 밥을 빌어 부친을 공양한다. 장승상 부인의 수양딸 제의를 받고 돌아오는 청이가 늦자, 심학규는 배웅을 나서다 개울에 빠진다. 물에 빠진 심학규를 구한 화주승이 공양미 삼백석을 불전에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하니, 그저 눈 뜬다는 말에 신나 시주를 약속한다. 약속한 시주를 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말에 심학규는 괴로워한다. 이 사실을 안 청이는 제수로 자신을 팔아 시주하고, 남겨진 아비를 걱정하며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딸을 팔아 눈뜨면 무엇 하냐 울지마는 속수무책. 심청의 효심에 감동한 선인들이 남겨진 아비에게 재물을 남긴다.    


심청의 효심에 감동받은 옥황상제는 사해용왕에게 명을 내려, 광한전의 옥진부인이 된 곽씨 부인과 심청 모녀를 상봉하게 하고, 심청을 연꽃에 태워 용궁시녀들과 함께 뭍으로 보낸다. 선인들이 귀한 연꽃을 왕에게 진상하니 시녀들이 왕께 청하여 심청은 황후가 된다. 심청이 황후가 되고 태평성대를 이루나 심청의 마음속엔 아비 생각뿐이라, 혹여 눈 못 뜬 아비를 찾고자 맹인 잔치를 연다. 심학규가 재물 있음을 알고 접근한 뺑덕이네가 가산을 탕진하던 중, 어느 날 잔치 소식을 듣고, 심학규는 뺑덕이네와 상경 길에 오른다. 가는 길에 뺑덕은 다른 젊은 맹인과 눈이 맞아 도망하고, 심학규는 어렵게 어렵게 잔치에 이른다. 그렇게 부녀가 상봉하는데, 아직 눈 못 뜬 아비를 보고 슬퍼하는 심청의 효심에 하늘이 다시 감동하여, 나라 안의 모든 앞 못 보는 이들이 눈을 뜨고 기뻐하며 극은 막을 내린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가족들과 창극을 보러온 관객들이 많았다. 평소 좀처럼 효(孝)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든 자립하려고 아등바등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우리 세대에게 효는 어쩌면 사치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눈먼 아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심청의 효심이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가. 그 유효함을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유교와 불교에서 강요한 이 효를 끝끝내 실현한 심청을 보고 있자니, 설령 그것이 제도와 교육에 의해 주입된 것이라 해도 숭고한 것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곽씨 부인이 난지 칠일 된 제 아기를 두고 가는 어미의 심정을 절절하게 노래할 때는 차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지극한 사랑 앞에, 심청의 효심은 어느정도 설득이 된다. 부모의 돌봄 없이는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저를, 앞도 못 보는 아비가 젖을 동냥하며 키웠다는 사실에 진정 감사하는 심청은 기꺼이 두렵지만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여전히 동의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믿는 신이 정말 이토록 끔직한 상황을 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안전한 뱃길을 위해 제수를 바다에 던지는 것이나 앞 못 보는 이들의 간절함을 미끼로 밥을 빌어먹는 이에게 공양미를 바치라는 것이나, 이런 것이 정말 신의 뜻일까 싶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지극한 마음은 귀한 것이라 그것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들이 그저 저들 편할 대로, 신은 차마 요구한 적도 없는 것을 재단하고 이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그 와중에도 그 지극함은 귀한 것이어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심청가의 무대는 관객들이 오로지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작나무색의 무대바닥과 주변을 에워싼 6개의 모듈, 뒤편을 가리는 발, 그리고 동일한 색감의 평상으로만 구성된다. 발 뒤에는 9명의 악사들이 극을 풍성하게 한다. 단순하게 꾸며진 무대 위에 27명의 소리꾼은 소리도 했다가 관객이 되기도 했다가, 무대를 이리저리 오가며 극을 함께 즐긴다.


객석 여기저기서는 흥에 겨워 장단을 맞추는 추임새가 들린다. 판소리란 이렇듯 관객이 함께 즐기는 것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이런 흥에 몸을 맡긴다면, 김성녀 예술감독의 말처럼 소리로 귀를 씻고, 소리로 마음을 열고, 소리로 하나가 되는 전율을 맛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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