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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06. 2017

아이러니가 빚은 ‘웃음’이라는 위안

미타니 코키 원작, 연극 <웃음의 대학>


  

  <웃음의 대학>, 제목만 보면 무언가 엄청나게 웃겨서 보는 이의 스트레스를 단박에 날려줄 희극 중의 희극일거라 기대된다. 그래서 어디한번 얼마나 웃기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찾는 다면 조금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웃음의 대학>은 분명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웃음과 동시에 웃음이 주는 위안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전하는 것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웃음의 지점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훅하고 튀어나와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선사해서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계속해서 좁혀 나간다.     


  <웃음의 대학>은 1996년 초연된 일본의 유명 극작가인(지금은 영화감독이기도 한) 미타니 코키(みたにこうき, Mitani Koki)의 대표작으로 국내에는 2008년 연극열전2의 시리즈 중 9번째 작품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2008년 국내 초연 이후 2010년, 2011년 앵콜 공연까지 막이 올랐으니 이미 흥행이 보증된 작품이다. 송영창, 황정민, 안석환, 엄효섭, 정재성, 정웅인, 조희봉, 정경호, 김도현, 봉태규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베테랑 배우들이 역할을 맡은바 있다. 2013년 <웃음의 대학>은 지난 모든 극에 참여한 송영창과 서현철, 조재윤이 검열관 사키사카 무츠오 역으로, 김승대, 정태우, 류덕환이 희극작가 츠바키 하지메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되었다. 연출(2013)은 김낙형이 맡았다.       


  무대 위에는 검열관과 희극작가 둘 뿐이다. 100분 동안 오로지 이 두 사람이 무대를 채워나간다. 때문에 배우의 개성과 역량이 극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크다. 배우 각 각의 기운은 한 짝(pair)이 되어 호흡하고 관객들은 그 화학작용 안에서 다시 호흡한다. 극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혼란한 1940년경,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이다. 희극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냉정한 검열관과 어떻게든 무대에 희극을 올리려는 극단 ‘웃음의 대학’의 작가가 검열에 통과하려 실랑이를 벌이는 일주일간의 이야기가 주요내용이다.      


  <웃음의 대학>의 매력은 아이러니(irony)에 있다. 희극작가에게 웃을 수 없는 희극을 쓰라는 검열관 사키사카 무츠오의 생떼가 일단 아이러니다. 웃을 수 없는 희극을 만들려고 오만 애를 쓸수록 극은 더욱 더 웃음을 유발하게 되는 것 역시 아이러니. 억지를 부리면 부릴수록 그 억지가 유발하는 웃음이 희극에 담기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진심으로 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검열관은 작가 츠바키와 함께 극본을 수정해 나가는 일주일간 마치 ‘웃음의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처럼 누구보다 ‘웃음’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갖게 된다.      


  <웃음의 대학>은 계속해서 모순된 상황들을 연출하며 의외의 결과들을 끄집어낸다. 검열관 사키사카는 작가 츠바키와 그의 작품 ‘햄릿과 줄리엣’을 인질로 붙잡고 있다. 작가 츠바키는 자신을 못살게 굴고 억지를 부리는 사키사카에게 붙들려 뭐든 시키는 대로 밤을 새워가며 극본을 수정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점점 혼란에 빠진다. 범죄자에게 연민을 느끼는 인질처럼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 극본을 수정한다 비난을 받아도 극을 올릴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츠바키는 지금 극본에 가장 애정을 쏟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검열관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괜한 시비로 딴지거리를 찾으려 극본을 읽어나가던 사키사카는  어느 순간 웃음이 주는 위로를 깨닫게 되고 마치 인질에 동화되어 폭력성을 점차 잃어가는 범죄자처럼 그의 역할과 신념에 혼란을 겪는다. - 조금 과장하면 이것은 스톡홀롬 증후군과 리마증후군처럼 보이기도 한다 -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들을 하나하나 내어놓으며 조금씩 동화되어 간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끔찍한 시대, 비극이 현실이 된 시대의 희극이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진짜 웃음이 주는 위안의 크기는 생을 가름 짓는 예술임을 그 두 사람을 보며 깨닫는다.      


  극 중간에 작가 츠바키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라며 풍랑에 표류하다 무인도에서 인질로 잡혀 거의 죽음에 이른 어부 이야기를 꺼낸다. 다 죽게 된 마당에 똥통을 술병으로 착각한 원주민의 꼴이 웃겨서 크게 한바탕 웃고 나니 ‘살아갈 수 있겠구나, 다시 살아야 겠구나’하고 생의 의지를 다진다. 웃음의 위안이란 그런 것이다.       

  처음 <웃음의 대학>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웃음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인데 대학이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키사카처럼 웃음을 배우지 않으면 웃을 수도 없는 시대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시대란 비단 큰 전쟁의 소용돌이 속이 아니더라도 억압과 탄압이 관습이 되어버린 시대라면 언제든 웃음은 메마른다. 다행인 것은 웃는 법이란 한번 배우면 결코 잊을 수 없어서 그 단한번의 배움으로 평생을 살아낼 수 있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가장 슬픈 순간 춤을 추며 한바탕 크게 웃으며 슬픔을 극복한 것처럼, 우리는 한번 배운 웃음으로 생을 지속해 나간다.       


  작가 츠바키는 자신의 방식으로 웃음을 지킨다. 자신의 방식을 지켜나가는 것이 예술이고 그 예술은 결국 삶과 닿아 있음을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극장을 나서며 아르코 미술관 앞을 지나는데 크게 쓰여 진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는 문구. <웃음의 대학>을 보고 나온 탓인지 내 눈에는 “웃음은 삶을 예술보다 흥미롭게 하는 것”으로  읽히더라. 사실 ‘웃음은 예술 그 자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무대 위의 달력과 까마귀 소리, 조명의 움직임만으로 공간에 새로움을 부여한 연출과 캐릭터가 분명한 배역을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새롭게 창조해 낸 배우들의 조화로 <웃음의 대학>은 예측을 조금씩 벗어난 재미와 간장을 선사한다. 웃느라 생각할 시간을 빼앗아가는 시시한 극이 아니라서 웃다보면 어느새 사색하게 되어 고마운 마음으로 대학로를 빠져나왔다.



* 2008년 부터 2016년까지 거의 매년 대학로 무대에 오른 연극 <웃음의 대학>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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