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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06. 2017

세상은 어두워도 별은 빛난다

문동진 연출, 드로잉 뮤지컬 <고흐즈>



뮤지컬 <고흐즈>는 네덜란드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주인공으로 한다. 빈번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다 37세 나이로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겨누고 자살한 불운의 화가. 죽고 나서야 그의 작품들은 비로소 인정받는데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그려졌다고 알려져 있다.


극劇은 빈센트 반 고흐가 죽기 전 2년을 보낸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이 경매장에 오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슬픈 명작으로 소개된 그의 그림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자신을 ‘반 고운’으로 소개한 여인은 <별이 빛나는 밤>은 슬픈 작품이 아니라며 자기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한다. 그렇게 관객은 2년 전 생레미 정신병원과 마주한다. 그곳에는 두 명의 고흐가 있다. 한 명은 신경질적이고 냉소적이다. 다른 한 명은 미소를 지으며 냉소적인 고흐를 도닥인다. 처음엔 왜 고흐가 둘이지 싶다가 어느 순간 이 두 명의 고흐가 결국에는 한 사람이며 내면의 분열된 자아가 서로 대화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기본 드라마에 배우들은 노래로 대화하고 고흐의 실제 작품들을 즉석에서 드로잉 퍼포먼스로 풀어낸다. <아를의 카페테라스(1888)>, <해바라기(1888)>, <고흐의 방(1888)> 등이 눈앞에서 그려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무엇보다 <별이 빛나는 밤(1889)>이 그려지는 모습은 보다 흥미롭다.


극을 보면서 내내 왜 ‘고흐’일까 궁금했다. 아픔이나 슬픔을 겪은 화가들은 많이 있지 않은가. 알고 보니 고흐는 미술품 중개업을 가업으로 하는 기독교 가정에서 나고 자랐더라. 할아버지는 신학을 전공했고 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늘 하나님이 인도하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고백을 했다고 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시작된 극단 ‘드라폼’에게는 훌륭한 소재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극중에 분열된 자아인 두 명의 고흐는 무언가 섭리를 알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랑 많은 고흐가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고통 받는 고흐를 격려하여 마침내 고난을 극복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시 또 의문이 들었다. 죽기 전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권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흐를 고난을 극복한 희망적인 인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 해석일까 하는 점에서 말이다. 고흐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연출의 희망적인 메시지는 해피엔딩을 소원하는 관객들에게는 고마운 결말일지 모르나 의문은 계속되었다. 의문을 해소하고자 찾아본 한 편의 논문은 이 질문에 다소나마 해답을 주었는데, 고흐가 시달린 정신운동성질환(귀를 자른 연유를 근거로)과 우울증(자살의 근거로)을 극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겪은 영적 체험을 현시하는 행위로서 그가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불후의 명작들이 탄생했다.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그 시간 동안 그가 늘 바라던 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그림을 그리겠다는 그의 마음의 소망이 극복의 의지를 실현하는 시간을 버티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 가운데에서 그가 겪은 영적 체험을 우리는 그의 작품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그렇게 슬픈 동기로 그려질 수는 없다.”는 여주인공 반고운의 말이 완전히 허구는 아니겠다 싶다.


그가 겪은 상실과 슬픔의 깊이를 우리는 가늠할 수 없다. 또 그의 고난이 극복되었는가의 여부도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체험한 세계가 그의 그림에 녹아든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있자니 세상은 어두워도 별은 빛난다는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 단 세 명의 배우가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연기하며 엄청난 집중력과 노동으로 제한시간 안에 그림을 그려내는 모습은 직접 눈으로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2014년 극장 드라폼 문동진 연출 드로잉 뮤지컬 <고흐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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