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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06. 2017

나를 속인 건 나의 욕망

김광보 연출 <엠. 버터플라이 M. Butterfly>



“사랑은 자기 반영과 자기 복제. 입은 비뚤어져도 바로 말하자. 내가 너를 통해 사랑하는 건 내가 이미 알았고, 사랑했던 것들이다……사랑은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할 뿐,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중략).


이성복의 시詩 <사랑은 사랑만을 사랑할 뿐>의 일부다. 사랑이란 자신이 투영된 환상 안에서 사랑하는 것뿐이라는 그의 시어詩語는 ‘나를 속인 건 나의 욕망’이라는 연극 <엠. 버터플라이>의 메인카피와 꼭 들어맞는다.

1960년대 중국 베이징, 푸치니의 오페라<나비부인>을 좋아하는 프랑스 외교관 르네 갈리마르는 <나비부인>의 여주인공 초초상을 연기하는 경극배우 송 릴링을 보고 매료된다. 자신을 보잘 것 없이 여기던 동료와 가족들 사이에서 소심하기만 하던 르네는 자신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송 릴링과 무례한 핑커튼 대령에 순정을 바친 희생적인 동양여성 초초상을 오버랩한다. 서양인이라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르네는 자신에게 굴복하는 송을 통해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며 더 깊이 그녀에게 빠진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건다. 하지만 자신이 모든 것을 걸고 사랑을 바친 여인이 사실은 남성이었다는 사실과 송이 자신에게 접근한 것 역시 제국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당시의 정국을 타계하기 위해 정보를 빼내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었음을 알고 자살을 시도한다.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1966년부터 1986년까지 20년간 성별을 오해한 채 사랑을 나눈 프랑스 외교관과 중국 경극배우의 실화에 푸치니의 오페라<나비부인>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더한 작품이다. 무대는 르네의 환상과 동일 시 되는데 그 안에는 남자와 여자, 동양과 서양,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대립된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다. 각각의 대립은 그 차이로 인해 편견을 낳고 그 편견을 토양으로 르네와 송은 자신들의 욕망을 뿌리내린다. 편견이라는 토양에 뿌리내린 욕망은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실체를 드러낸다. 서양의 우월주의로 아시아 여성의 성역할을 결정지어 그 환상을 사랑하는 르네는 자신의 환상이 얼마나 굴절되었는지를 깨닫게 된 순간 무너져 내린다.


르네의 머릿속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무대디자인은 르네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지어졌다. 르네가 이상적인 여성으로 여기는 초초상이 허공에서 노래하면 르네는 그것을 올려다본다. 무대 중앙에서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핑커튼 대령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한다. 그렇게 대령을 뒤로하고 무대를 가로질러 송 릴링에게 다가간다. 르네의 의식에 따라 수없이 변하는 시공간과 인물의 심리는 오페라 <나비부인>의 테마곡들과 변화무쌍하면서 오묘한 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시선으로 표현되어 관객들이 현실과 환상을 오가도록 이끈다.

르네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다. 송은 사랑의 대상인 자신의 정체성이 르네가 알던 것과 다르다 해도 함께한 시간과 그들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송을 배신자로 단정하기에는 르네의 환상이, 욕망이 지나쳤다. 그것이 비록 임무였을지라도 그의 환상을 어떻게든 지켜주려 애쓴 송의 태도와 시간 역시 사랑이 아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르네가 초초상의 환영을 입힌 자신의 연인 송 릴링의 진실을 대면할 때, 르네는 끝내 자신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그 환상이 되기를 택한다. 핑커튼 대령인 줄 알았던 자신이 오히려 사랑에 배신당한 초초상이 되어버렸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의 믿음대로 초초상이 된 르네는 얼굴에 게이샤의 화장을 칠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모두가 쫓고 있는 사랑의 환영이 결국에는 개인의 욕망과 바람이 투영된 환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환상을 가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애를 쓰는 현재의 나에 대한 연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의 환상이 환영으로 남게 하지 않는 것, 환상으로 시작된 사랑이 현실을 파괴하지 못하게 하는 것, 나아가 환상을 환상으로 인정하고 현실에서 진짜 사랑을 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방패이지 않을까.



* 2014년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김광보 연출 연극 <엠. 버터플라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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