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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ug 06. 2018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좋은 7가지 이유

아녜스 바르다, JR(2017),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Daum 영화


숨겨진 의도 따위는 없는 대화, 영감을 향해 가는 말들, 만나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여서, 작품이 되는 것, 그 작품은 또 다시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는 것, 비록 언제가 혹은 당장 사라진다해도, 인상적인 순간들이, 그런 무드가 가득한 영화였다.


인상적인 일곱가지를 꼽아보았다.


하나. 제일 좋았던 건 두 사람의 담백하고도, 긴장 넘치는 대화. 그저 사람들을 담아내는 프로젝트가 존재하고,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서로의 생각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데 필요한 대화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 물론 영상에 담기지 않은 무수한 말들이 존재할 테지만, 스크린 안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담백하다 못해, 여백이 있는 대화였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떤 의도도 숨겨진 의미따위는 없는. 그래서 다른 고민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담백함이 너무나 좋았다.


둘. 음악. 감정을 강요하는 음악이 아니라, 감정을 흐르게 하는 음악인지라, 저절로 음악을 따라 바르다 그리고 JR과 함께 걷게 되더라는 것. 감독은 음악감독에게 어떻게 주문?! 했을지도 상상해 보게 된다. 여기서는 여행의 기대를, 여기서는 미스테리한 느낌을 담아줘 라고 주문했을지도.


셋. 자신의 생각과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 고집스레 손으로 젖을 짜고, 대대손손 종을 치고, 항구에서 일하고, 혹은 최저생계비로 삶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 다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구나 싶어서 위로 받았다. 나와 같이 꾸역꾸역 매일 출근하며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사진에 담겨 새겨질 때, 평범함과 꾸준함이 특별하게 대접받는 것 같아서 기뻤다.


@Daum 영화


넷. 파도에 쓸려나간 작품과 바람과 모래에 사라진 두 사람의 흔적. 이건 연출에 대한 건데, 작품이 쓸려나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바르다와 JR의 모습이 겹치고 바람과 모래가 그들의 모습마저 지우는 장면은 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 어떤 것이었다. 소중한 것은 작품 자체이기보다 소중한 순간 자체, 그 시간의 시점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 그것을 그려낸 이들이 시간에 흩어지는 것처럼 흐려지고 옅어질 때, 오묘하고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그저 어떤 시간을 스쳐간다.


다섯. 어디든 의자를 두고 한 곳을 바라보는 것. 그들은 무언가를 담기에 앞서 바라본다. 그리고 담아낸것을 한참 동안 지긋하게 또 바라본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시구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에게 나에게 무언가를 지긋이 바라보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것은 진실로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여유가 내 안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그만 일에도, 조그마한 불편함에도 돌아서버리는 일이 너무나 많아서, 그리고 조금의 용기를 내지 못해 잃어버린 것들이 떠올라서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여섯. 브레송의 조용한 묘지, 결정적 순간이란 말을 싫어했다니. 브레송을 좋아한다. 그가 남긴 사진들 몇장은 사진첩에 두고 종종 꺼내볼 정도.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그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했는데, 싫어했다는 사실이 몹시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너무도 오래된 오해에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것. 그리고 조용한 그의 무덤을 볼 수 있어서 정말이지 좋았다.


일곱. 우울한 바르다를 위로 하려고 자신의 고집을 잠시 꺽은 JR과 그의 위트 있는 연출. 고집스럽게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JR이 그녀를 위해 용기를 내는 모습과 더불어 이 순간을 위해 곳곳에 배치한 두사람의 입씨름과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숨기운 그 재치에 한참을 웃었다. 이런 재능은 타고나는 걸거야. 라며 감탄.


@Daum 영화


예술가란 그저 떠나는 것, 시도하는 것, 그냥 하는 것 이구나 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쌓아올린, 어쩌면 보잘 것 없을지 모를 적당한 것들에 매여,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어 슬펐다. 그러다 예술가의 삶은 그 모든 것으로 부터 해방하는 것일테니, 이내 마음을 고쳐먹기를, 나는 그저 바르다가 우연히 만나기를 고대하는, 꾸준하게 살아가는 그런 어떤 얼굴이 되어야지, 그게 우리 각자의 예술이니까.


우리는 우리의 예술을 꾸준히 해나가야지.


여기에, 나의 얼굴, 당신의 얼굴, 그래서 떠오르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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