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2018, 풀비오 리술레오(2017), Italy
단편으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로마 출신 91년생 풀비오 리술레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부분 경쟁작에 초대되었다.
그의 영화 <지붕 위의 모험>은 어릴 때 즐겨 읽던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의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땐, 어딘가에 한번도 본적 없는 무언가가, 세상을 신나게 사는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사건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딘가에서 그런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그 모험을 떠나게 될 거라는 상상을.
동화책을 안보기 시작하게 된 시절 부터 아마도, 상상은 망상으로 치부되고, 그 믿음은 놀랍게도 현실이 되어서, 일상 외에는 남은 것이 없는 현재를 살고있다. 어쩌면 지금도 모험은 가능하다고, 그리 멀리에 있지 않다고 영화는 말을 건다. 호기심을 따라 내딪은 한걸음이 주인공을 모험으로 몰아넣은 것 처럼 말이다.
빵가게에서 일하는 테코는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 이상하게 날아가는 갈매기를 발견한다. 갑자기 추락하는 갈매기에 이끌려 옆집 옥상으로 넘어간 테코는 가면 쓴 아이들, 옥상으로 추락한 파일럿, 화가 난 수녀들 등 수상한 ‘옥상사람들’을 만난다.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된 옥상 점프는 종교와 사상, 시간과 세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모험이 된다. (BIFAN 영화소개글 참조)
빵가게 청년 테코는 휴식시간, 무료함을 달래러 올라온 옥상에서 우연히 발견한 갈매기를 쫓다가 옥상을 아지트 삼아 노는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테코를 그들 무리에 들일 것인지의 여부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다. 상의를 마친 아이들은 그를 아지트에 들이기로 하고 몇가지 규칙을 설명해준다.
절대 모두 가면을 쓸 것
아마도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출구로는 나가지 말것
우주선을 만드는 과학자 멤버에게 협조할 것
아이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보통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고 쓰는 가면이, 여기서는 오히려 모든 관계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가면은, 숨기고 싶은 자신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라, 본래 자신을 가리는 편견으로 부터 해방하게 하는 자정의 도구로 작동한다. 그들의 나이, 겉모습이 그들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려낸 그림이 담긴 가면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고, 그렇게 누구나 친구가 된다. 주인공 테코 역시 아이들과 함께 가면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리중 자신의 열망을 위해 가면을 쓰고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상상을 실현하며 사는 한 친구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우리(?)는 우리의 상상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는지, 그토록 열망하는 상상 혹은 이상이 있는지,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은 나를 가리는 것인지, 나를 자유하게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또 사실 우리의 열망이라는 것이 실은 내것이기보다 그래야 한다고 강요받은 우리 사회의 욕망은 아닌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너무 뻔한, 내 한몸 편하기 위해 열거된 경제적, 사회적 여건들을을 쫓는 삶에 상상이라고 이름붙이기에는 너무나 닫혀있는 답안들, 이 조건들이 어느새 우리의 상상과 이상의 자리를 대체해버린건 아닌지. 점잖게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늙고 있는 우리의 미래를 상상하니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든다.
테코는 규칙(?)을 깨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 일러준 통로로 또 한발을 내딪는다. 그는 그곳에서 늙어버린 모험가, 기억을 잃어가는 탐험가인 바오밥을 만난다. 그의 집에는 그와 평생을 함께 여행했다는 바오밥 나무가 화분에 담겨있다. 그는 이제 그 나무를 그의 집 마당에 심으려 한다. 땅에 심겨진 바오밥나무는 이제 더이상 여행할 수 없다. 그것은 이제 늙어버려 여행을 그만둔 탐험가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는, 비행사가 바오밥 나무는 자주 뽑아주지 않으면 별을 다 집어삼켜버릴 거라고 경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탐험가의 마당에 심기운 나무는 마치 비행사의 경고처럼 이제 그가 더이상 모험을 할 수 없게, 그의 모험을, 그리고 우리의 모험심을 다 집어 삼켜버릴 것이라는 은유같다.
늙어버린 모험.
늙음은 모험의 반댓말이 아니건만, 영화에서 늙음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것 같이 읽히는 것은 다소 아쉽다, 모험은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라, 그저 한발을 내딪고, 모험을 지속하는 자의 것일 뿐이거늘.
테코는 옥상에서 세상 신기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고대유물인지 무엇인지 정체를 알수 없는 물건을 로봇 갈매기로 주고받는 수녀들과, 여행중이라며 별안간 하늘에서 내려온 파일럿 커플,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모르겠는 옥상 위의 펍, 그곳에서 즐기는 노래와 춤, 달팽이로 내기 경주를 하는 사람들, 나체로 살아가는 자들, 마치 모든 관습을 벗어버린 것 같은 이들이 옥상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옥상에 있다. 땅에 발을 딪지 않고 있는 이들은, 그 자체로 이미 모험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