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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21. 2016

미타니 코키의 '지킬 앤 하이드'

정태영 연출,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

올 4월부터 7월까지 연극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가 다시 무대에 오른단다. 그리하여  작년 처음으로 무대에 선보일 당시, 기고했던 리뷰를 올려본다.




<웃음의 대학>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 작가 미타니 코키가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2014년 4월 일본에서의 프리뷰를 시작으로 무대에 오른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두 달 동안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났다. <술과 눈물과 지킬 앤 하이드>는 제목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앤 하이드>에서 시작해 전혀 새로운 미타니 코키만의 희극을 완성했다.


지킬과 빅터의 만남(출처 : 플레이디비)


19세기 후반 지킬 박사는 인간의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을 완전히 분리해내는 신약을 개발 한다. 연극은 연구 지원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시작된다. 지킬 박사의 실험실엔 지킬 박사와 그의 조수 풀, 그리고 그의 약혼녀 이브 댄버스가 있다. 이브 댄버스는 촉망받는 지킬 박사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무언가 모르게 지루하고 꽉 막힌 지킬이 탐탁하지 않다. 지킬은 당장 하루 앞으로 다가온 자신의 신약 결과 발표회를 준비하며 가장 큰 문제에 자신이 직면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연구가 실패했다는 사실.


원작이 신약 개발에 성공한 지킬 박사가 겪는 윤리적인 문제로 인한 내면의 갈등, 신약의 결과로 분리된 인격이 빚어내는 고통과 비극적인 로맨스, 그 가운데 드러나는 사회적 위선을 드러냈다면, 이미 실험에 실패해 버린 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이 전혀 다른 방식은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지킬은 도저히 연구가 실패했다고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지킬과 풀은 단역배우 빅터를 섭외해 신약 개발의 성공으로 분리된 인격, 사악하고 음란한 하이드를 연기해 달라고 주문한다. 망설임 끝에 주문을 수락한 빅터와 리허설 준비가 한창인 그때, 미스 댄버스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다시 새로운 국면에 빠진다. 늘 고리타분하기만 해서 지루한 지킬의 내면이 하이드라는 걸 알게 된 미스 댄버스는 빅터가 연기하는 하이드에 반하고 만다. 지킬과 하이드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던 미스 댄버스는 신약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기 최면이라는 놀라운 수단으로 내면의 또 다른 자아 하이디를 불러낸다.


 거친 하이드에 매력을 느끼는 이브 댄버스(출처 : 플레이디비)


신약 개발은 실패했지만 그들이 끌어낸 다양한 인격들은 마치 신약 개발이 성공한 것처럼 다채롭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해 내는 것은 어쩌면 연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술과 눈물에 기댄 우리의 자기 최면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과감한 자기 자신을 한 번쯤은 꿈꾸고 그 꿈이 무대 위에서 분출될 때, 그 과장된 꿈이 유발하는 웃음은 관객을 매료시킨다. 지킬의 실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단 네 명의 배우, 지킬 박사와 그의 조수 풀, 내면에 하이디를 장착한 미스 이브 댄버스, 어느새 무대를 휘어잡아버린 하이드(이자 빅터)가 전하는 단순한 웃음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펼쳐진 그 빼곡한 웃음의 결을 쫓는 재미를 선사한다.


지킬을 돕느라 정신없는 조수 풀(출처 : 플레이디비)


웃음의 백미는 하이드를 연기하는 빅터가 순간순간 눈치를 보며 하이드를 연기할 타이밍을 보는 찰나, 관객들은 그 웃음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웃음을 터트리는데, 그 호흡의 순간, 관객은 연극이 갖는 “현장”의 매력에 푹 빠진다. 연극은 훌륭한 연출,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들, 적절한 조명과 음악, 알맞은 무대도 중요하지만, 웃을 준비가 된 열린 관객을 통해서 완성된다. 미타니 코키는 이번 극을 준비하며 감동 따위는 없는, 다만 보고 있을 때는 신나게 웃고 극장을 나설 때 아무것도 남지 않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직 웃음에 집중하고자 한 그의 철학은 실은 인간이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고민, 인간이 웃음을 유발하는 순간에 대한 숙고를 통해 세상에 나왔을 것이다. 감동과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노력보다, 오직 웃음을 주려는 노력만이 희극의 세계에선 의미가 있다.


희극에서 감동이란 결국 웃음뿐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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