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롱 Mar 22. 2016

피조자와 피조물이라는 숙명

"NT live", 대니 보일 연출, <프랑켄슈타인:현대의 프로메테우스>

국립극장은 영국 국립극장의 연극을 스크린으로 만나는 NT live 프로젝트로 <프랑켄슈타인>을 선보였다.


 <28일 후>의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대니 보일의 연출작이자 국내에서 영국드라마 <셜록 홈즈> 시리즈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의 출연으로 2011년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메이킹 필름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두 사람의 주연배우가 각각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을 번갈아 연기하며 피조자와 피조물의 입장에 모두 서게 되는 점인데, 그로 인해 배우들의 연기는 한층 섬세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NT live


텅 빈 무대에 자궁의 형상을 한 원형물체가 있다. 무대 위로는 번뜩이는 섬광이 원형물체를 비춘다. 피조물은 그 원형을 뜯어내고 세상으로 자신을 밀어낸다. 자신의 육체를 감각하며 세상을 인지하는 도중 자신을 발견하고 도망치는 자신의 피조자를 본다. 이름조차 없이 피조자에게 버려진 피조물은 산새 소리의 아름다움, 빛과 물의 감촉, 싱그러운 풀 내음을 들이마시며 조금씩 세상을 감각한다. 세상에 나왔으나 누구의 보살핌도 받을 수 없는 피조물은 스스로 두 발로 서기 위한 물리적인 고투의 시간을 겪는다. 피조물은 온 무대를 뒹굴며 두 발로 서기까지의 과정을 지난하게 보여준다.


두 발로 세상에 섰으나 사람들과는 다른 흉측한 외모로 인해 그가 세상에 속할 수 없는 존재임을 돌을 맞고 매질을 당하며 깨닫는다. 세상에 대한 정보도, 보살핌도 받을 수 없이 세상에 버려진 그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어쩌면 그의 외모에 놀란 사람들이 느낄 공포보다 더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외모에 가려진 그의 두려움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이름 없이 버려진 그를 부르는 소리는 “monster괴물”이라는 외침뿐이다. 사람들을 피해 농가로 숨어든 피조물은 한 노인을 만난다. 앞 못 보는 노인은 그에게 말과 글을 가르치고 많은 책을 읽힌다. 하지만 그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족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피조물은 그들 집을 불태우고 진짜 ‘괴물’이 된다.


NT live


자신의 흉측한 외모와 태생은 그에게 외로움을 운명으로 줄 것임을 깨달은 피조물은 자신을 버릴 때 함께 버려진 창조자의 일기장을 통해 그의 피조자인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찾아낸다. 박사는 자신을 만들었으니 자신의 반려자도 만들어달라는 피조물의 요구를 받아들였으나 도의적으로 괴로워하다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자신의 단 하나의 욕망이자 유일한 희망이 좌절되자 피조물은 그의 부인을 살해하고 도망한다.


원작인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현대의 프로메테우스(1818)>는 그런 피조물을 쫓아 북극까지 건너가 죽음을 맞이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연극은 피조자와 피조물이 그들의 복수와 원망을 자양분 삼아 그들을 지탱하며 북극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NT live


피조물은 반려자를 원했다.

그것은 사람과 같은 종류의 생존본능이라기 보다는 자기존재에 대한 인정이자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자신을 세상에 내놓은 피조자에게 조차 존재를 부정당한 피조물의 슬픔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고 서로에 대한 원망과 절망만이 남았으나 자신의 오만함에 대한 인정과 그 결과에 대한 연민이 그들로 결국에는 서로의 반려자로서 생을 이끌어나가게 한다. 그것은 어느 무엇보다 강력한 존재의 인정이 되며 피조물은 강한 부정으로 긍정이 되어버린 그의 희망을 안고 북극을 향해 전진한다.


막 태어난 아이의 연약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힘이다. 피조물은 흉측하게 만들어진 탓에 누구의 보호도 받을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을 만든 피조자에게마저 버려졌다. 피조자는 생명의 신비를 알아내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피조물을 만들었으나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없었고 감당하지 못했다.


원작의 원제목처럼 오만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인간을 흙으로 빚고 그들에게 불을 주었다는 그리스신화의 신 프로메테우스처럼 죽은 자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은 죄로 그 대가를 치른다. 피조자로서 자신의 피조물의 반려자가 되는 숙명을 그들은 함께 북극을 향하며 깨닫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크린으로 만나는 연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