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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Mar 23. 2016

기억과의 대화

김동현 연출, 연극<생각나는 사람>

미래의 회복을 위해 과거의 영혼을 간직할지니…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에서 


윌리엄 워즈워스의 말을 빌리면, 영혼을 간직한다는 것의 의미는 미래의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처방이다. 다시 말해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이들의 회복을 위해 과거의 영혼은 간직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과거의 영혼은 간직될 수 있나. 혹은 간직해야 하나. 극단 코끼리만보의 연극 <생각나는 사람>은 미래의 회복을 위해 과거의 영혼을 어떻게 간직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맨발로 선 기억과 언어들


말의 무덤 혹은 부활 

연극은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 ‘말들의 무덤’은 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구성된다. 14명의 배우는 각각 그 증언의 도구로써, 이미 죽어버린 자들과 살아남았지만 이제 사라져버린 존재하지 않는 영혼들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그들은 맨발로 서고, 걷고, 눕고, 모였다 사라진다. 오로지 과거를 향해 있는 그들의 눈과 그들의 말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이들의 삶을 현재 우리 앞에 존재하게 한다. 그들의 얼굴과 이름, 그들이 살던 집과 마을의 풍경, 어디로 어떻게 폭격이 날아왔는지, 사람들은 어디로 누구와 도망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어떻게 취조를 당하고 끌려갔는지, 어디서 어떻게 줄지어 죽어나갔는지. 그들의 과거는 배우들의 눈빛과 말을 통해 객석에 앉은 관객의 기억 속에 사건과 상념으로 재구성된다. 어쩌면 이것은 말의 무덤이기보다 말의 부활 같다. 


2부 ‘착한 사람 조양규’는 40년 가까이 행방불명이던 사내가 홀로 죽어 8개월 만에 발견된 실제 사건으로부터 ‘조양규’라는 허구의 인물을 만들고 그 사내의 지난 흔적을 좇아가는 이야기다. 실은 그가 베트남 전쟁의 실종자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물으면 스스로 답할 수조차 없는 사람임을 1971년에 동물원을 도망친 홍학의 이야기와 견주어 이야기한다. 그는 실재實在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아니며 때문에 누구나 될 수 있다. 배우들은 돌아가며 조양규를 연기하면서 그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라는 아이러니를 전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연극은 2편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의 상처와 아픔을 개인의 삶으로 온전히 떠안고 사라져 버린 이들을 기억하여 현재에 존재하게 한다. 그들 각자 존재했었으나 지금은 잊혀진 이야기들이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도록, 현재의 일부로 존재하도록 이끈다. 그렇게 과거는 새롭게 현재와 호응하여 새로운 현재가 된다. ‘알라이다 아스만’의 말대로라면 “그것은 왜곡이라기보다 기억의 속성이다.” 

과거는 무대로부터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걸 기회를 얻는다. 그들의 사라짐은 무대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다시 “존재”로 탈바꿈한다. 존재가 남긴 흔적을 좇을 때, 과거는 현재 여기 우리의 기억으로 치환된다. 그들 개인의 삶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그들이며 동시에 우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워즈워스의 말을 빌려보자. 그의 시 <서곡>에서 그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이다

라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그 자체가 기억될 때, 우리의 미래는 회복을 담보할 수 있다. 


* 김동현 연출, 극단 코끼리만보 연극<생각나는 사람(2015)> 주간기독교 문화짚어내기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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