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진(2023), 터틀넥프레스
할 일이 많을 땐 왜 책이 읽고 싶어지는 걸까. 일하러 나와서는 같이 들고 나온 책을 후루룩 읽었는데, 쉽게 읽히고 내용도 흥미롭다. 기록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다음의 질문을 가지고 읽기를 시작했다.
아카이빙과 에디팅과 큐레이팅은 어떻게 다른가
결론적으로는 아카이빙은 기록이 가진 본연의 맥락과 의미에 집중하는 반면,
에디팅과 큐레이팅은 편집과 선별의 과정을 통해 결과물이 가질 의미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공통된 부분이 많은데,
아키비스트의 능력 중 아카이브의 맥락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기록을 포착해 내는 능력이 중요한 것처럼
(그런 자료들을 수집해 내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에디팅에서도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중요하다는 것.
아카이빙을 하는 데에도 인사이트가 될 지점이 많은 책이었는데, 목차는 거의 아카이브 관련 강의할 때의 강의목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에디팅은, 편집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방식 그 자체다 라고 작가는 못 박았는데, 아카이빙에서 기록 속에 숨은 서사들이 드러나도록 기록의 흐름을 살피고, 아카이브가 이용자들과 만나게 할 때, 그 서사를 앞세워 기록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 것은 이런 에디팅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작가가 인용한 문구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먼저 테드 창의 <숨>의 인용문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을 공평하게 축적해 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기존 재료로부터 해석과 의미부여를 통해 만드는 인지적 차별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면 아카이빙은 의도적으로 인지적 차별점을 만들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기록을 통해, 기록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맥락을 대표하는 기록을 발견해 내고 수집하고, 그 이야기를 기술(description)을 통해 해석을 강화할 수 있다. <숨>의 인용구처럼, 기억이란 이미 기억자의 관점에서 선별이 완료된 기록으로 간주하고, 사실 여부를 파악하되, 그 사실이 기억자에 의해 왜 그렇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기술할 수 있다.
다음은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의 인용문구 중
"통찰은 사실을 재배열하는 일"
작가는 편집이 사실을 재배열하는 일이고, 그 사이에서 의미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 속에서 독자는 통찰을 얻게 됨을 시사한다. 아카이빙은 기록의 정리를 통해 기록을 재배열하고 재배치하지만 그것은 원질서를 존중하고 원래의 모습을 재현하려는데 초점을 둔다. 원래의 의미를 찾아가는 방향으로, 그래서 그것이 가진 고유의 의미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기록은 재자리를 찾아간다.
인터뷰 스킬에 있어서도 참고점이 많았는데,
우리가 의례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믿음을 가시화해서 그것을 되물을 것, 그런 경우 상대가 전제하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고, 그 전제를 쌓아가는 그의 신념과 가치관, 생각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니까. 또 사안을 바라보는 위치와 상황적 맥락을 바꾸어 질문할 것, 상황의 회고에만 머무르는 답이 되지 않게 '왜'를 묻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또 독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할지, 나였다면 어땠을지를 상상하며 물으라고 조언한다. 질문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인사이트로 가득한 책이었다. 이제 일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