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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pr 01. 2016

거짓말이라는 해결책

레이 쿠니 작, 김애자 연출, <룸넘버13(Room No.13)>

<룸넘버 13>은 2008년 초연이후 어마어마한 누적관객에도 불구하고 아직 더 웃을 준비가 된 관객들을 위해 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영국에서 30여 편의 연극을 쓰고 연출한 희극작가 레이 쿠니(Ray Cooney)는 이 작품으로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 베스트 코미디상'을 수상한바 있다. 그의 대표적인 연극 중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는 <라이어>, <달링>, <룸넘버13> 등이 있다. 오로지 웃기기 위해 쓰여 진 연극들.


레이 쿠니의 희극은 도덕과 도리에서 벗어난 주인공이 스스로 자처한 상황이 위기에 처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거짓말로 더욱 복잡하고 황당한 국면에 처하게 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레이 쿠니식의 전형적인 프레임을 가진다. 단순한 거짓말이 쌓여 복잡한 거짓말의 얼개가 되고, 복잡한 얼개는 주인공을 점점 더 황당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는다. 그 황당함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관객들은 웃음의 요소들을 짐작하면서도 웃지 않고는 베길 수 없게 된다. 그의 작품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대사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쉴 틈 없이 이어진 반전으로, 배우들이 흥건하게 땀을 흘리며 열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반전과 반전이 이어지는 데에는 배우들 간의 앙상블과 적재적소를 찌르는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적절함은 관객들을 더욱 더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룸넘버13> 공연 포스터


<룸넘버13>을 즐기려면 일단 인간이 빠지게 된, 그것이 자처한 것이든 아니든, 불륜이라는 상황의 불륜성을 지적하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오로지 불륜의 상황을 덮기 위해 해대는 거짓말과 거짓말이 낳게 되는 황당한 상황에 대해 웃으면 될 뿐이다. 그 거짓말의 적극성은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하려는 인간들의 노오오오오력이 안쓰러워서, 그 생의 의지가 기특해서, 그 불륜의 불륜성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이, 주인공이 위기에서 벗어났으면 하고 슬쩍 바라게 된다. 아이러니하다.


연극<룸넘버13>은 스스로 소개 글에서 밝힌 바와 전대미문의 여야화합 폭소 스캔들로 요약할 수 있다. 여당 국회의원인 리처드와 야당 총재의 여비서인 제인은 ‘불륜’,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난, 상황에 처해있다. 리처드와 제인은 밀회를 즐기기 위해 국정감사시기에 몰래 호텔 613호를 찾는다. 그들이 굴과 샴페인으로 분위기를 내려는 순간, 호텔 발코니 창틀에서 시체를 발견한다. 여야화합(?)의 장면을 들켜선 안 되는 그들은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시체를 옷장에 숨기고 리처드의 비서 조지를 호출한다. 리처드는 조지와 시체를 밖으로 옮기려고 계획하지만, 호텔지배인과 웨이터의 끊임없는 방문으로 시체를 이동하는 게 여의치 않다. 지배인과 웨이터의 질문공세에, 급기야 제인과 조지는 신혼부부가 되고 시체는 조지의 술 취한 사촌형이 되는 등 말도 안 되는 형국이 된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 리처드를 찾아온 아내 파멜라와 아내의 불륜을 확신하고 현장을 잡으러 온 제인의 남편 로니까지 등장하며 상황은 점점 더 해결하기 어려운 국면에 다다른다.


   

출처 : 플레이디비


거짓말의 원리는 무엇일까

누군가 내게, 혹은 네게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믿게 되는 것에는 ‘이해관계’와 ‘선입견’이라는 바탕이 있다. 리처드는 조지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걸고 사건 처리를 부탁한다. 웨이터는 사건처리를 위해 요구하는 심부름의 대가로 끊임없이 팁을 요구한다. 로니는 국회의원인 리처드를 신뢰한다. 신뢰의 근거는 그는 국회의원이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회의원은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지만 말이다.



<룸넘버13>은 성(性)적 웃음코드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웃음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이 연극은 피해야 한다. 처음 웃지 않기로 다짐하고 동석한 친구는 연극이 끝나고 나서 얼굴이 붉어지도록 웃고 나왔으니, 그럼에도 웃음이 담보된 이 연극을 보러간다면 웃지 않고는 베길 수 없을 것이다.


거짓말이 통하는 세상에,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 참을 웃고 나면 웃음과는 별개로 누구를 믿으며 살아야 할까 싶어진다. 그리고 진심으로 ‘거짓말이라는 해결책’은 연극에서만 쓰여 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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