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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pr 04. 2016

잊지 못한다는 건

김낙형 연출, <민들레 바람 되어>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견딜 수 없어하면서도 자꾸 찾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사랑일까



민들레가 피어있는 동산에 의자가 놓여있다.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는 듯 바라보지 않고 서로 대화하는 듯 하지만 이야기가 엇갈린다. 집중하는 사이, 그 엇갈린 대화가 자신의 무덤을 뒤로한 죽은 아내와  그 아내를 만나러 언덕을 오른 남편의 대화임을 알게된다. 남편은 매해 때가 되면 그녀를 찾아 동산에 오른다. 매해 오던 것이 잦아지더니 어느새 십수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녀를 찾아와서 그녀의 무덤가에 앉아 그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고단함 그리고 얽힌 오해들을 토해낸다. 그들은 살아서 서로를 마주하고 대화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죽음이 그들 사이에 놓여있을 때에야 비로소 서로를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출처 : 플레이디비


삶이 순탄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삶은 누구에게도 그다지 순하지 못하다. 갑작스런 아내나 남편의 죽음이 그럴 것이고 몇 번이고 고배를 마셔야 하는 승진의 관문이 그럴 것이고 무엇보다 자식들의 일이 맘처럼 풀일 리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나이가 들고 몸은 고된데 아이들은 훌쩍 커버리고 손 써볼 사이 없이 저마다 성인이라며 앞으로만 질주한다.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 다시 가정을 꾸렸지만 삶의 쓸쓸함과 순간순간 밀려오는 살아감의 피로를 타인과 온전히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다.(거의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삶의 고비 고비 마다 중기는 죽은 아내를 찾아와 그 고단함을 토해낸다. 그리고 아내가 살아있던 그때, 서로에 대한 오해와 실수로 인해 그들이 나눈 상처를 깨닫고 눈물짓는다.



부부란 무엇일까. 이미 결혼을 한 사람에게도 아직 미혼인 사람에게도 속 시원한 해답을 얻기란 쉽진 않을 것 같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어떤 존재이기를 원할까. 오랜 시간 함께 삶을 이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런 질문들이 연극 사이사이 관객에게 던져진다. 죽은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여전히 예쁘냐고 묻는다. 언제나 소중하게 고임 받고 싶었던 아내는 늘 집을 비우던 남편이 미웠다. 남편은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그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아내가 미웠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미움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그리워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중기는 그들이 일군 가정을 지켜내며 맛난 음식을 대할 때면 죽은 아내를 떠올린다.



좋았던 시절, 함께 보낸 시간, 순수하던 시절의 기억으로 어쩌면 우리는 평생을 사는지 모른다. 잊지 못할,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을 가지고 서슬 퍼런 세상의 날(刀)들을 견뎌낸다. 그런 날에 베일 때마다 찾아갈 곳이 있다면 그래도 살아갈 만 하다. 남편 중기에게 아내 지영의 무덤이 그랬듯이 말이다. 자신이 날짜 지난 신문같이 느껴질 때, 시시각각 변하는 세월에 잊혀 져 창고 한 쪽에 쌓여버린 오래된 신문처럼 자신의 많은 이야기들을 누구도 들춰보려 하지 않을 때, 그 수많은 이야기와 사건들을 소중히 들춰봐줄 누군가가 그리운 것이다. 그 단 한 사람, 누구도 들춰보지 않을 옛이야기들, 하지만 너무도 소중해서 버릴 수 없는 그 순간들을 함께 들춰볼 누군가가 중기에겐 지영이다. 폭풍 같던 시련도, 가슴 벅찬 사건도 함께한 그 시간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관객들의 마음에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자리한다.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윤새라 역, 펭귄클래식)


사실 온전하게 행복한 가정도 온전하게 불행한 가정도 없는 것 같다. 다만 톨스토이의 말처럼 그러한 불행을 받아들이는 각각의 마음들은 서로 견줄 수 없이 각각의 슬픔으로 남는다. 불행한 마음은 다양하지만 불행의 유형은 행복의 유형만큼이나 간단하다. 서로의 믿음에 대한 배신,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들의 죽음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불행을 비극으로 종결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불행의 원인 자체는 분명 슬픈 것이지만 불행 자체는 아니다. 기억해야 할 누군가를 완전히 지움으로써 불행의 원인을 비극이라는 불행의 결말로 끌어내리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불행이다. 중기와 지영은 오해와 실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오해와 실수들을 불행에 처넣지 않고 그들은 서로를 지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억한다. 그리고 때때로 서로에게 머리 둘 곳이 되어준다. 누군가를 완전히 잊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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