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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관계

우리는 친한 사이인가

by 영롱


코끝에 물집이 잡혔다. 따가워서 약국에 갔더니, 피곤하신가봐요 하며 약사님이 항바이러스 연고를 건낸다. 피곤하진 않은데 나른하다. 환절기는 환절기인건지, 며칠 전부터 콧속이 마르고 얼굴이 당긴다. 비타민도 먹고 팩을 해도 효과를 모르겠다.


존중하는 것, 존중받는 것은 실로 어렵다. 그래서 때론 예의에 기대고, 적당한 말, 괜한 소리, 뻔한 말을 해댄다. 어쩔 땐 예의를 차려주는게 고맙고, 어떨 땐 진심으로 대해도 형식적이라 비난받는다. 솔직하고 편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친밀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친밀함 안에서 우리는 존중받기를 원하다.


친밀함은 애쓴다고 얻어지지 않더라. 각각 다소의 호감, 충분한 시간, 알맞은 박자가 나란해서 서로 마주할 수 있을 때 친밀함을 얻을 수 있다. 그 중 호감과 시간은 그래도 쉽다. 외모나 말투, 어떤 순간의 화학 작용으로 호감은 쉽게 얻어진다. 그렇게 시간도 쌓이고. 어려운 건 서로의 박자가 맞는 일인데 어느 정도 박자가 맞아주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자신의 페이스에 익숙해지면 조절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혹은 조절하기엔 그 정성과 에너지를 생각할 때, 이미 삶이 고되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쉬운 것은 상대의 박자를 내 기준에 맞춰 판단하거나 그런 상대를 비웃거나 하는 것이다. 남는 것은 견고하고 고집스러운 나와 나의 박자. 적당하고 보잘 것 없는 관계들이다.


친밀함이 없이는 존중도 없다. 고맙게도 어떤 착각들은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호감을 불러 일으키며, 박자가 달라도 그 다름에 대해 저항감을 잃게하고, 드물게는 자신마저 잃는다. 자신을 꼭 잃지 않더라도 어느정도 침범 당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여전히 제자리일거란 생각도 든다. 그저 따분해질 뿐. 어떤 것도 그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저 나른해져서, 그리고 물집잡힌 코끝이 거슬려서 멍하게 쓸데 없는 소리를 늘어놓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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