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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pr 15. 2017

행진의 기록

416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


416, 세월호가 침몰하고 3주기다. 공교롭게도 부활주일. 세월호가 가라앉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차마 사건이라는 말로 부를 수 없는, 그 어마어마한 사회적 재난으로 부터, 잊을 수 없는 생명들,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해야할 일들, 삶의 방향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부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그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해 7월, 안산에서 국회를 지나 광화문까지 이어진 도보 행진이 있었다. 당시에 영등포에서 국회까지 함께 걷고선 그때의 마음을 글로 남겨두려 일기를 썼었다. 행진하며 썼던 당시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 당연한듯 삶을 앗아간 무능함을 반복하지 않게, 눈을 부릅떠야지 맘을 다잡는다,






2014년 7월 24일 행진의 기록


광명 성애병원부터 따라붙어 국회까지 걸었다. 겨우 세 시간을 조금 넘긴 시간이다. 연차 덕에 오전을 뺄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까만 옷에 운동화를 신고 노란 스카프를 가방에 동여맸다. 아침엔 행진 노선을 찾느라 마른 땀을 살짝 흘리고 나서야 겨우 대열을 쫒아 걸을 수 있었다. 신기하게 아는 사람도 만나고 모르는 이들과도 쉬이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를 안고 나온 아이 엄마와 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걷는데 길마다 응원하는 현수막, 박수소리, 건네 온 물, 과자 초콜릿 같은 것들이 계속 전달되었는데 괜히 울컥했다. 아마도 앞서 걷는 유가족들을 향한 것일 거라 생각했다. 또 연신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말에는 대신 걸어주어 고맙다는 인사인걸 알고 부끄러운 생각 이 들었다. 겨우 몇 걸음 걸은 것으로 이런 격려는 과분하니까, 하지만 행렬에는 오래도록 함께했던 사람들임에 분명한 얼굴들이 여럿 보였다. 나는 다만 어떤 표정으로 답해야 할지 망설이다 그저 행렬을 따를 뿐이었다.


그렇게 걷다가 고대구로병원에서 한번,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한번 쉬었다. 쉬다가 출발할 때면 몇 반 몇 반하며 외치는 소리에, 그 소리를 따르는 숫자와 이름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 아들의 얼굴과 이름이 쓰인 천을 앞뒤로 묶어 입은 아비 얼굴을 보니 눈물이 푹 쏟아질 것 같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미안해져서 어금니를 꽉 물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런 풍경이 이어졌다. 몇 반 몇 반, 아마도 많은 일반인 희생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참을 요량으로 그저 땅을 보거나 앞사람의 등만을 보며 걸었다.


영등포를 출발할 때부터 비가 쏟아졌다. 국회에 다다를 때 옆에서 걷는 한 할머니가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넋 나간 사람처럼 걷고 있었다. 왜 여기서 걷고 계신지 물을 엄두도 안 났다. 행렬을 쫒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할머니는 비가 오는 편이, 날이 흐려 구름이 드리워진 편이, 그래서 내리는 비를 맞는 편이 더 시원하다며, 행진하는 사람들에겐 오히려 고마운 비라고 하셨다. 국회 가는 길가에 핀 무궁화가 비를 맞아 흔들거리는 게 처량 맞아 보였다.


눈물을 꼭 참고 있었던 탓인지 쏟아져 내리는 비가 속이 시원했다. 가물고 메마른 땅에 내리는 비는 달건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흠뻑 젖었는데도 그 속은 여전히 바싹 메 말라보였다. 그렇게 국회까지 걷고 돌아왔다. 비와 운동화에 쓸려 발 여기저기에 상처가 남았다.


커다란 배가 깊은 바다에 목 끝까지 잠기도록 눈을 뜨고 지켜본 그 참담함과 백일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 기가 막힌 현실과, 대안을 제시해도 등을 돌리고 귀를 막고 있는 정부와, 온갖 유언비어로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과, 오직 선량한 개인들에 기대어 빌어먹으려 하는 악하고 폐역 한 것들에 진저리가 난다.


선한 것 하나 없는 우리를 날마다 통곡하지만, 이제는 통곡을 너머 보다 구체적인 참여와 단계적 압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날의 기억을 적고 나니 더 막막. 주말 내내 신나게 놀다 온 것도 미안해진다. 미안해하는 것 말고 무언가 함께 움직이고 싶다. 개인의 생을 살고 즐기면서 함께 타인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렇게 기쁨과 슬픔을 함께 품고 행동하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감히 그 고통을 상상할 수도 없지만 견디기 힘들어 고개를 돌릴 엄두도 못 내겠던 그날 오전의 기억만을 안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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