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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Jul 06. 2016

17세기 파리에서 날아온 '사랑과 전쟁'

왕용범 연출, 뮤지컬 <삼총사>

TV만화영화 시리즈 <달타냥의 대모험>의 한장면


어릴 적, TV만화영화 시리즈 <달타냥의 대모험(원제 아니메 삼총사 アニメ三銃士)>에 푹 빠져있던 기억이 난다.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삼총사>를 원작으로 만든 일본 TV애니메이션 시리즈였다. 늠름한 삼총사에 비해 애송이에 불과한 달타냥이 그들과 친구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사랑에 빠지고 성장하는 모습에 내가 더 신났었다.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All for One, One for All)”를 외치며 검을 마주 댄 그들의 구호를 따라했던 기억도 있다.      


만화영화를 보며, 달타냥이 사랑하는 여인 콘스탄스가 되기보다는 달타냥이 되고 싶었다. 삼총사와 친구가 되고 왕을 위해, 나라를 위해, 명예를 위해 싸우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비춰져서다. 2009년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는 뮤지컬<삼총사>는 그 추억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 달타냥과 세 명의 총사 보다 이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밀라디’라는 여인에 더 집중하게 된 것이다. 뮤지컬<삼총사>는 달타냥과 삼총사의 우정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배신과 오해, 살아남기 위해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밀라디’의 이야기다.      


출처 : 플레이디비


17세기 프랑스, 가스코뉴 시골에서 총사가 되기 위해 파리로 상경한 달타냥은 도시의 화려함에 정신을 팔다 소매치기를 당한다. 소매치기를 좇던 중 세 명의 총사, 최고 검사劍士 아토스, 은근 순정파 아라미스, 한 때 해적질 좀 해본 포르토스와 차례로 만나, 호기롭게 그들과 정오의 시계탑 앞에서의 결투를 약속한다. 결투장에는 그들 말고도 추기경 리슐리외의 근위대가 있었다.  달타냥과 삼총사의 결투구도는 어느새 총사와 군위대의 결투구도로 바뀐다. 함께 호흡을 맞추며 결투를 승리로 이끈 그들 사이에는 끈끈한 우정의 싹이 튼다.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마른 목을 축이고 옛 사랑이야기에 흥을 돋우던 저녁, 달타냥이 첫눈에 반한 그녀, 콘스탄스의 비명이 들린다. 이윽고 그녀와 그녀가 집에 숨겨주고 도와주던 정체모를 철가면의 사내가 함께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이들 삼총사와 달타냥은 사랑하는 사람과 추기경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 납치범을 좇는다. 그리고 이들 배후에 아토스의 전前 연인이자 아라미스의 마음까지 농락(?)한 여인 밀라디와 리슐리외 추기경이 있음을 알게된다.      


추기경의 사주로 그들을 납치한 밀라디, 삼총사의 과거와 밀접한 여인이자 문제해결의 열쇠를 쥔 밀라디의 삶은 거의 한편의 <사랑과 전쟁>의 다름 아니다. 밀라디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에사르 후작. 모함으로 인해 반역자로 몰려 도망하려는 순간, 연인 아토스는 일단 왕의 명을 받들어야 한다며 그들의 길을 가로 막는다. 결국 후작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고 그녀 역시 죄인의 낙인을 받는다. 사랑의 배신으로 홀로서기를 결심하며 자취를 감춘 그녀는 에사르 가문의 땅을 회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고 부를 쌓는다. 이를 위해 추기경의 음모와 손을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장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결국은 가장 먼저 제거해야 될 대상이 된다. 추기경과 등을 지고 지하 감옥에 갇혀 또 한번 위기에 처한 그 때, 아토스는 도움이 간절하던 밀라디를 다시 한 번 버려둔다. 그 절망의 한 가운데서 부르는 밀라디의 ‘버림받은 나’는 이 유쾌한 희극을 완전히 뒤집고 관객을 비극의 한 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출처 : 플레이디비


밀라디의 슬픔과 절규,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그녀의 이유 있는 복수극은 관객의 응원을 불러일으킨다. 이 무심하고 무정한 남자 아토스. 이 따위 것(?)이 총사라니,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나 모르겠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데, 제 때에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 생명도 타이밍이다. 단두대에 올라간 생명은 되돌릴 수 없다. 설령 반역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이의 가족을 지키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마당에, 누명인 줄 알면서도 아비를 죽음으로 내몬 연인의 아둔함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을 모르는 자가 과연 제대로 명예를 알겠는가. 아토스는 극의 말미에 앞으로의 삶을 모두 그녀에게 바치겠다고 호언하며, 그녀를 찾고자 길을 떠나는데, 밀라디에게 제발 받아주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지더라. 하지만 이 미련한 여인네 아직도 아토스를 사랑하는 것 같다.      


밀라디의 삶을 위한 몸부림과 다시 또 일어서기를 멈추지 않는 그녀의 의지는 ‘남자들만의 세계’를 다룬 뮤지컬<삼총사>에 입체감을 더한다. 그녀는 복수를 구실삼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배신에 굴하지 않고, 그녀 스스로 세상을 정의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삼총사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뮤지컬<삼총사>는 내게 ‘한 여인의 사랑과 복수, 기구한 삶’을 다룬 뮤지컬<밀라디>가 되었다. 밀라디를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탄탄한 이야기 구조, 1막과 2막을 꼼꼼하게 채운 21곡의 넘버들, 캐릭터의 전형성을 강조함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재치, 밀라디라는 여성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려는 연출 등 뮤지컬<삼총사>는 유쾌하고도 여운이 남는 묘한 작품이었다.  


뮤지컬 <삼총사>는 지난 6월 26일 세 달여의 공연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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