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와 함께 춤을(The Lure)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IFAN 2016) 리뷰 1탄

by 영롱

2002년 20살 무렵부터 다녔던 부천영화제가 어느새 20회란다. 마치 영화제와 함께 늙은 기분. 피판PIFAN이 더 익숙한데, 이렇게 불쓱 비판BIFAN이라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나의 어색함 따위야 중요치 않겠지만. 어쨌든. 폐막전에 포스팅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역시 게으름이 발목을 잡는다.


올해는 하루 날을 잡고 5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음... '하루 5편은 무리'라는 교훈을 얻었다. 피판의 매력은 평소 보기힘든 각국의 유혈낭자한,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발하고 야하고 끔찍하고 또 웃긴 스토리들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올해는 지난 몇해간의 잡음?을 불식할 정도로 라인업이 좋다하여 기쁜 마음으로 영화를 골랐다.


내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 끔찍한 소재들이 이제 더이상 유머와 상상이 아닌 다큐가 되어버린 세상이라선지, 여성으로서 영화를 느끼는 공포의 강도가 여느 해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여성들이 영화에서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가 계속해서 신경을 자극했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던 몇 몇 시선들에 주목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5편의 리뷰를 남겨본다! 뭐, 스포가 있는 건 당연하다.


그 첫번째 작품은 폴란드에서 날아온 아그네즈카 시모친즈카 감독의 <인어와 함께 춤을>이다!


인어와 함께 춤을(The Lure)

아그네즈카 스모친즈카 Agnieszka SMOCZYNSKA(1978년생, 女)

Poland | 2015 | 92min | DCP Color Fiction | 18 |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극영화부문 심사위원특별상(장편데뷔작)


론하워드 감독의 1984년작 <스플래쉬>를 본 이후로, 인어가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본 것 같다. 사실 몇 편없지 싶지만. 인어를 실물로 형상화해낸 장면들을 보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폴란드에서 온 감독의 이 작품은 보다 몽환적이고 소녀소녀하며, 이 소녀소녀함은 소녀소녀해서 더 잔혹하고 동시에 순수하다. 그 단단하고 매끈한 정말 생선같던 지느러미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뮤지컬과 호러, 로맨스와 코미디가 뒤섞인 이 매혹적인 동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어공주(왕자를 위해 목소리를 잃고 다리를 얻었으나 결국엔 물거품이 되어버린) 이야기의 현대판 변주다.


인어 자매 골드와 실버는 우연히 바닷가에서 밤무대 뮤지션들을 만나 인간 세계로 들어온다. 타고난 미모를 앞세워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는 자매 덕분에 밴드의 인기가 치솟고, 인어 자매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간다. (영화제 브로슈어 참조)


영화음악은 정말이지 감각적이고 가사들은 시적이다. 그리고 그 시어를 내뱉는 인어들의 목소리는 뱃사람들을 홀린다는 사이렌의 그것과 같다. 끝나지 않았으면 바라게 되는 소리의 춤. 골드와 실버는 둘다 사랑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맞출 준비가 된 실버는 골드 보다 먼저 그와 사랑에 빠진다. 괜히 외로워진 골드는 심술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걸 맞추기만 하는 실버가 걱정된다. 실버는 그를 위해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꾸나 그의 변심 앞에 다시한번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다. 나는 속으로 몇번이나 물거품이 되기전에 그의 목을 물어뜯기를 응원했는지 모른다. 실버가 그를 죽이고 스스로 살아남기를 택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정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소녀들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숭고한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에 진저리가 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버는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버린다. 그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물거품이 되어버린 숱한 소녀들과 여인들이 떠올라 분노가 치밀었다. 그나마 골드의 응징으로 위로 삼았다. 감독은 실버는 실버의 삶의 방식대로, 골드는 골드의 삶의 방식대로 자신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그대로 담았다. 실버가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자체도 그래서 결국엔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어쩌면 뻔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몹시도 몽환적이고 세련되게 담아냈다. 별점을 4개 준것이 지금 생각해서는 모자란 것 같다. 또 보고 싶은 영화.


감독은 감독이다. 여성 감독, 남성 감독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분명 여성이라서 여성의 시선으로 담을 수 있는, 표현할 수 있는 범주와 방향이 있는 것 같다. 남성 위주의 시선으로 그려진 영화들이 많은 지금, 통계까지는 모르겠지만 감독들이 대부분 남성이므로 관객들은 남성의 시선으로 영화를 읽게 될 수 밖에없다. 더 많은 여성감독들이 자신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어내야만 양적으로도 균형이 맞는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관객들에게 노출되는 시선들도 균형이 맞게 될 것이므로 영화를 읽는 폭도 넓어질 수 있다. 이날 영화를 모두 보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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