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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Oct 27. 2016

햄릿의 진짜 비극은

연극 <햄릿 - 더플레이>, 연출 김동연, 연극열전6 세번째 작품


어릴 적,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문고본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이 고작 급식 때 딸기우유가 나오지 않는 것이던 당시로써는 그의 슬픔이, 그들 왕가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지는 못했다. 어렴풋이나마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는 아픔을 이해하게 된 지금은 햄릿의 고뇌와 그들 모두의 죽음이 그리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서거 400주기를 맞은 셰익스피어를 기념하며 곳곳에서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햄릿-더플레이>도 그렇게 무대에 올랐다.


<햄릿>은 비극이다. 그는 숙부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숙부와 결혼한다. 햄릿은 후에 아버지의 죽음의 배후에 숙부가 있음을 알고 복수를 다짐한다. 미친 척하며 상황을 옅 보지만 막상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광기에 사로잡혀 실수로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죽이고 만다. 사랑하는 이에게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어는 그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한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숙부 클로디우스와 누이동생 오필리어의 복수를 원하는 레이티즈는 독을 바른 검으로 햄릿을 죽일 연회를 마련한다. 숙부가 독이든 잔을 햄릿에게 건내자, 그의 어머니 거투르드는 숙부의 속내를 직감하고 아들대신 잔을 든다. 게임이라는 명목으로 결투를 하다 검에 찔린 레이티즈와 햄릿도 죽음에 이른다. 햄릿은 죽기 전 마지막 힘을 다해 숙부를 찌른다.



죽음은 비극이다. 하지만 햄릿의 비극은 그 자신의 죽음에 있지 않다. 그의 비극은 오히려 그가 살아있음으로 존재한다. 선왕의 망령은 그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복수를 지시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는 어린 시절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숙부다. 숙부는 선왕을 죽인 것도 모자라 자신의 어머니를 차지한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숙부의 침대에 눕는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그는 오히려 진실을 모른척해야 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사랑하는 오필리어의 아버지는 숙부의 편에 서서 그를 감시하니, 그녀조차 믿을 수 없다. 그의 비극은 그가 숨 쉬므로 함께 숨 쉰다. 죽음은 비극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을 덮어 종결해 버릴 뿐이므로 ‘사느냐 죽느냐’라는 질문은 옳은 질문이 아니다.


비극은 비극에 속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한다. 햄릿은 그의 비극 속에서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한다. 복수의 칼을 가는, 살아있는 이의 심장을 쪼갤 독수리가 아니라, 시체 주변을 서성이는, 죽은 살점을 떼어먹을 기회를 옅 보는 검은 새. 그것은 그의 숙부도, 어머니도, 대신들도, 친구인 척하는 이들도 모두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인 것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의 유약함을, 그리고 그의 복수가 이토록 연약한 것임을 반영한다. 그의 연약함은 일찍이 프로이트가 지적한 것처럼 그의 어머니를 범한 숙부와 자기 자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투르드 왕비와 오필리어는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데, 영리한 선택같다). 그는 이런 현실을 감당하는 것조차 버겁고 힘겨워 복수를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하다 엉뚱한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연극은 어린 햄릿과 어른 햄릿을 교차하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부각한다. 어린 햄릿은 자신이 아버지를 위해 준비하던 연극의 등장인물들의 죽음마저 애도하고, 이를 위해 기도하기를 잊지 않는 정의롭고 따뜻하고 왕자다. 지금 분노와 불안에 사로잡힌 햄릿이 어린 햄릿의 곁을 지날 때, 관객은 평안을 잃은 햄릿에 연민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소년 햄릿이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마음에 있다. 그 청명한 목소리로 늙은 병사가 전쟁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노랫말과 구슬픈 곡조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죽음은 슬프지만 비극이 아니다. 진짜 비극이 비극이게 하는 것은 햄릿의 망설임에 내재된 자기혐오, 그리고 슬픔 자체를 결과로 인식하여 그 속에서 광기에 사로잡히는 것, 속을 지라도 사랑하는 이를 믿어볼 용기를 내지 못한 것,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것 자체다. 극 중의 대사처럼, 죽음은 그저 '지금 오면 다음엔 안 오고, 다음에 오지 않는다면 지금 오는 것'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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