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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Jan 08. 2017

전쟁이 기른 아이들

연출 윤시중, 연극 <위대한 놀이>

쌍둥이가 있다. 이름은 알 수 없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공습이 멈출 때까지, 국경지역의 할머니 댁에 숨어있으라며 두 아이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다. 쌍둥이의 할머니는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일하는, 동네에서는 마녀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녀는 아이들을 떠맡긴 딸년이 밉다. 일할 수 없고 먹기만 해대는 아이들을 둘씩이나 던져놓다니, 아이들이 눈에 띌 때마다 일하라며 윽박지른다.


출처 : 하땅세 공식 페이스북

쌍둥이는 동네를 오가며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욕먹고 매 맞는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모욕적인 말과 폭력에 익숙해지기 위한 놀이를 시작한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귀에 험한 말을 내뱉는다. 다른 아이는 다시 한 아이의 귀에 비난을 쏟아낸다. 처음엔 속이 상하고 화가 났지만 매일매일 연습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다. 이제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뺨을 후려친다. 다른 아이도 한 아이의 뺨을 후려친다. 그렇게 매일 매일 연습하니, 매 맞는 일도 익숙해진다. 쌍둥이는 거리로 나가 자신들의 훈련의 결과를 확인한다. 어떤 모욕과 폭력에도 그들 정신은 손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가 그립고, 엄마가 해주던 사랑의 말들에는 눈물이 난다. 아이들은 그 감정을 견디는 것이 힘겨워 같은 방식의 놀이를 하기로 한다. 의미 없는 사랑의 말들을 매번 반복하니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감정을 잃은 쌍둥이는 이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출처 : 하땅세 공식 페이스북


쌍둥이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이 겪는 사건들을 그들 노트에 적기로 한다. 감정을 제외하고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다. 노트에는 언청이인 소녀가 신부와 마을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희롱 당하는 사실이, 옆방에 사는 독일장교는 성도착자라는 것이, 독일군에 끌려가는 유태인 행렬을 조롱하는 이들과 유태인을 숨겨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할머니와 독일군이 물러나며 불태운 유태인 학살 임시수용소의 자욱한 연기, 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새로운 군인들 역시 독일군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기록된다.      


쌍둥이를 되찾으러 온 엄마를 폭격에 잃은 쌍둥이의 슬픔은, 그 죽음의 장면이 무대 위에서 반복되고 반복되며 무디어진다. 뇌출혈로 쓰러진 할머니는 쌍둥이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요청한다. 쌍둥이는 그것을 수락한다. 전쟁포로에서 풀려났지만 여전히 쫓기는 신세인 아버지는 국경을 넘어가고자 한다. 쌍둥이는 넘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며 아버지를 돕는다. 아버지를 앞세워 국경 사방에 깔린 지뢰밭을 지날 때, 국경을 넘는 유일한 방법은 지뢰를 먼저 밟아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임을 말하는 쌍둥이의 고백은 이 위대한 놀이의 결말이 이토록 무덤덤한 잔인함임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출처 : 하땅세 공식 페이스북


연극은 헝가리 출신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중 1부 <비밀노트>의 이야기를 무대로 옮겨왔다. 유년시절 2차 세계대전을 겪고 1956년 중립으로 나아가기 위한 헝가리 10월 혁명 당시, 스위스로 망명한 작가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쌍둥이 소년의 눈을 통해 1989년까지 이어진 냉전시대를 바라본다. 이 허구의 이야기는 마치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처럼, 허구이지만 허구가 아닌 가장 진실 된 이야기가 된다.      


무대 안에서 쌍둥이들은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놀이를 한다. 연출은 무대를 감싸는 무대 밖의 무대 역시 하나의 커다란 놀이터로 구성한다. 연극은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악사와 함께한다. 무대 밖 아코디언 연주자의 반주에 따라 쌍둥이와 사람들의 슬픔은 리듬을 따라 걷고 뛴다. 쌍둥이는 하얀 테이프로 무대 위에 선을 그으며 공간을 구분하고 문을 만들고 벽을 만든다. 그 선은 때때로 시야를 가리고 누군가에겐 포탄의 파편이 된다. 마치 땅따먹기를 하는 것처럼, 하얀 선을 무대 위에 그었다 지우며 놀이는 이어진다. 그 선은 무대를 무대 안과 밖으로 나누는 기준이 된다. 배우들은 무대 밖에서도 목소리와 음향으로 참여하며 그 참여의 과정은 여과 없이 관객에게 전달되어 마치 모두가 이 놀이에 참여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바탕 이 놀이에 참여하고 나면 그 흥겨운 슬픔에 목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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